[투사 삼손]과 밀튼의 정치사상
김 재오 (서울대)
본 고의 목적은 밀튼(John Milton)의 ꡔ투사 삼손ꡕ(Samson Agonistes) 은 영국혁명이 혁명세력 내의 분열과 이해다툼으로 인해
결국 왕정복고에 이르게 된 역사적 국면에 대한 밀튼의 첨예한 대응이자 그런 역사적 국면을 타개하기위한 새로운 정치(혁명)사상의 모색이라는 점을
밝히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성경에 빗대어 영국의 상황을 비극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작품과 혁명기의 영국을 바로 연결시키기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 또한 작품의 역사적 맥락과는 별개로 작품을 읽는 독법에 따라 서로 다른 맥락을 상정하는 것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길로리(John
Guillory)에 따르면 이 작품에 대한 독법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별되는데, 삼손의 이야기를 공화정의 실패와 군주제의 회귀에 대한 일정한 반응으로
읽는 정치적 읽기, 삼손의 삶을 밀튼의 삶과 동일시하는 전기적 읽기, 그리고 ‘선민’으로서의 프로테스탄트의 갱생을 그리는 것으로 보는 신학적 읽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230). 예컨대 이 작품을 왕정복고기에 논란이 되었던 찰스 1세의 처형에 대한 재해석과 전유의 맥락에서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우상파괴와 우상숭배의 위협들을 다룬 극으로 보는 관점(Knoppers 43)이나 삼손을 ‘우상파괴주의자’(Iconoclastes)로서 천상의
분노를 신의 적들에게 쏟아내는 투쟁적인 행동가로 보는 독법(Loewenstein 127)은 서로 다른 맥락설정이 작품해석에 미친 영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 러나 이 작품의
집필연도에 따른 논란(Guillory 203; Lewalski 1061) 때문에 이 작품이 영국역사의 어떤 국면을
주제화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밀튼에게서 정치적 읽기, 신학적 읽기, 그리고 전기적 읽기가 엄밀하게 구분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진정한 프로테스탄트의 전형으로서 밀튼은 영국 혁명을 신의 뜻이 역사에서 실현되는 사건으로 보았던 만큼 세 가지 읽기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작품 해석에 일정한 왜곡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에서 삼손의 자유의지와 신의 뜻을 연결시켜줄 인과적 내러티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인과적 내러티브의 부재는 곧 밀튼의 입장에서 왕정복고 후 밀튼의 신학적 논리가 현실정치와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증표라 할 만하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괴리는 밀튼이 새로운 정치사상을 구상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이 될 수 있는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가 밀튼이 주창하는 급진적 정치사상의 개진이라는 성격을 띠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작품을 해석함에 있어 특정한 시기를
못박을 필요는 없을 것이며 특정한 독법으로 작품 해석을 강박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특정한 시기를 설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곧 밀튼의
정치사상개진으로만 이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밀튼의 정치사상이 노정되는 배경에 자리잡고 있는 역사적 현실을 작품 해석에 끌어들임으로써,
그의 정치사상이 시대와 맺고 있는 역동적인 관계를 따져보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혁명기의 영국상황을 살펴보고, 이 시기에 밀튼의
정치사상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천착한 다음, 작품 해석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2
크 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이 혁명기의 영국을 분석하면서 강조하는 점은 혁명세력내의 분화과정이다. 의회에서 조직한 군대(The
New Model Army)와 작위를 가진 모든 귀족과 의회 구성원의 권리를 박탈한 법령(Self-Denying Ordinance)을 두고 의회파는
‘장로파’와 ‘독립파’라는 두개의 세력으로 분화되었다. 전자가 보수적이라면, 후자는 급진적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 이 급진파에서도 ‘수평파’가
나타나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게 되는 등 의회파는 출신과 계급이 다른 각각의 세력들이 들고일어나 혁명에서 자신들의 몫을 보상받기 위해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게 되었다. ‘장로파’가 중심이 된 의회 보수파는 왕과 평민 사이에 끼어, 혁명이 귀족 계급 전체의 공멸을 가져오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보수적인 노선을 취하게 되었고, ‘수평파’가 중심이 된 급진파는 혁명을 귀족들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이렇게 혁명 세력 내의 분화는 크롬웰(Oliver Cromwell)이 호국경이 되었던 때도 계속되었는데, 따라서 크롬웰은 이러한 혼란한
정치상황을 수습하느라 국내 개혁에서는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Hill, Century 95-117). 여기서 혁명 세력내의 분화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밀튼이 혁명세력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밀튼의 다른 산문을 통해서도 이러한 점은 충분히 증명되겠지만,
ꡔ실낙원ꡕ(Paradise Lost) 에서 미카엘(Michael)이 아담과 이브에게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면서 행한 말에서도 이 점이 명백히 드러난다.
.
. . 그리하여 열정이 식은 채
그 이후로 그들의 신들이 허락한 향락을 일삼으며
어떻게 안심인명 하여 세속적이거나 방탕하게
살 지에 힘쓸 것이다. 지상에는 절제를 시험할 것이
충분히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 타락하고, 부패하여
정의와 절제, 진리와 믿음은 잊혀질 것이다.
.
. . therefore cool'd in zeal
Thenceforth
shall practice how to live secure,
Worldly
or dissolute, on what their Lords
Shall
leave them to enjoy; for th' Earth shall bear
More
than enough, that temperance may be tri'd:
So
all shall turn degenerate, all deprav'd
Justice
and Temperance, Truth and Faith
forgot;
(11.801-7)1)
미 카엘이 보여준
미래의 장면이지만, 이 대목은 신의 뜻을 배반한 혁명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들은 “열정이
식은 채” “어떻게 안심인명 할 것인가”에 골몰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타락하여 정의와 절제를 져버리고 진리와 믿음을 잊어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이 왕정복고 후에 신의 도리가 정당함을 밝히고자 쓰여진 작품이라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밀튼이 혁명세력이 안심인명 하는 태도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혁명세력에 대한 밀튼의 이러한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혁명세력과 밀튼의 차이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즉 밀판의 비판이 정당함을 밝히는 데 있어 영국혁명을 통해서 달성하려고 했던 밀튼의 이상이 어떤 성격을 지닌 것인지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밀 튼의 핵심적인
정치사상을 전면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때문에 논자는 힐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이를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혁명을 통한 밀튼의 목적이 크리스토퍼 힐이 인용한대로 “노예상태로부터 모든 인간 삶의 해방”에 있다면(Milton
92), 이를 가로막는 첫 번째 장애는 밀튼이 보기에는 ‘성직자 제도’(episcopacy)이다. 그것은 밀튼에게 왕의 전제정치를 보호해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밀튼이 국교회의 고위성직자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밀튼은 ꡔ교회이치론ꡕ(The Reason of
Church Government) 에서 다음처럼 말한다.
. . . 독재적인 관습이 종교에서는 천성적인 폭군을 낳고 정부에서는 폭정의
대리인이자 하수인을 낳게 되는 고위 성직자 제도는 마치 또 다른 마이다스 왕처럼 이 치명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그 제도가 교회조직이나
정치조직에서 만지거나 가까이 하려고 하는 무엇이든지, 그것은 황금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 . . 노예제의 찌꺼기로 변하는 것이다.
. . . prelaty, whom the tyrant custom
begot a natural tyrant in religion, and in state the agent and minister of
tyranny, seems to have had this fatal gift in her nativity, like another Midas,
that whatsoever she should touch or come near either in ecclesial or political
government, it should turn, not to gold . . . but to the dross and scum of
slavery. (Hughes 685-86)
밀 튼이 보기에 성직자
제도는 종교에서 독재를 낳을 뿐 아니라, 정치체제가 독재화되는 데 도구로서 기능한다. 그것은 곧 인간을 노예상태로
몰아가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밀튼이 우려하는 것은 왕정과 국교회의 공생관계인데, 이를 철폐하지 않고서는 혁명은 항상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 문건이 나온 시점이 혁명의 발발기인 1642년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밀튼의 정치적 이념의 맹아는 바로 종교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가
하나라는 생각에서 싹텄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밀튼에게 왕정의 폐지 못지않게 성직자제도의 폐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다. 그러나
의회파의 개혁은 1643년의 사전 검열법의 제정에서 알 수 있듯이 밀튼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ꡔ아레오파기티카ꡕ(Areopagitica)
에서 밀튼이 사전 검열법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도, 개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함이었다. 밀튼은 사전 검열법이 개혁의 일환으로 실행된 것이지만, 이는
찰스 1세 체제를 본받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개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다면 밀튼이 생각하기에 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한편으로 정치, 종교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의회의 개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밀튼이 주장하는 개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밀튼의 주장처럼
사전 검열법이 폐지되어(물론 밀튼은 사후 검열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편이다), 무수한 사상이 난립한다면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개혁에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까?
힐 에 따르면 분파를
억압하는 것이 오히려 분파를 확산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에, 밀튼은 종교적 다양성이 아나키에의 경도로 나타난다는
고전적인 사유를 포기하고 대신 선택으로서의 자유를 강조하게 되었다(Hill, Milton 153). ꡔ아레오파기티카ꡕ에서 주장하는 바 ‘악을 통해
선을 아는’ 적극적 사유(이성)를 통해 인간은 선을 선택하고 마침내 진리에 이른다는 생각이다. 선택으로서의 자유의 개념이 밀튼으로 하여금 이론적으로
칼뱅에서 아르미니우스에게로 관심을 돌리게 했으며, 동시에 신흥 장로파에 대한 반감이 실제에서 장로파로부터 멀어지게 했던 것이다(Hill,
Milton 154). 밀튼은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쪽으로 그의 종교(정치)이론을 발전시켜나갔으며, 장로파의 구체제적 성격(여러모로 성직자 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영국 국교회와 닮아있다는 점에서)이 진정한 정치적 개혁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쪽으로 정세 판단을 전개한 셈이다. 밀튼에게 자유란
진리 추구의 전제 조건이며 진리는 이러한 자유를 진정한 자유로 견인하는 내적 추동력이었던 것이다.
그 러나 이것이 실제로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실현될지는 의문시 될 수밖에 없겠는데,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 ꡔ기독교
교리ꡕ(De Doctrina) 에서 나타난다고 힐은 주장한다. 이 글의 서문에서 드러난 밀튼의 사상은 진리는 서서히 나타나며 계시는 점진적이라는
것이며, 이것은 올리버 크롬웰이 취한 태도, 이를테면, 행동에 앞서 섭리와 계시를 기다리는 자세와 밀접히 연결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진리가 일단
알려지면, 그것은 행동으로 이끈다는 것이다(Hill, Milton 154). 그러나 1657년에서부터 시작된 헌정 체제의 개혁을 둘러싸고 밀튼은
크롬웰과 의견을 달리하여, 크롬웰이 국교회(state church)를 유지해야한다고 했을 때 밀튼은 이를 반대하게 된다(Hill, Milton
192). 이런 이유로 밀튼은 크롬웰에게 교회로부터 모든 권력을 퇴거시키라고 요구하기에 이른다(Hill, Milton 194). 따라서
1660년 시점에서 밀튼은 혁명 세력이 점점 보수화 되어 그의 주장 중의 핵심인 국교회의 철폐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장로파가 중심이
되어 교회 정부를 세우고자 하는 사태를 맹렬히 공격한다. 이들은 군대를 해산시키고 왕정을 부활하려 한다고 밀튼은 생각한 것이다. 밀튼은 이러한
흐름에 대항하여 1660년에 전제 정치로의 회귀를 막기 위해 혁명의 대의(the Good Old Cause)의 지지자들을 규합하려고 애썼다(Hill,
Milton 212). 그런 의미에서 1660년 이후 밀튼이 크롬웰을 악마와 공모한 유령으로 그리는 것(Knoppers 53)은 영국혁명의 전개과정
자체에 대한 밀튼의 비판이 투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신의 종복들이 영국혁명이라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이용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에
직면하여 어떻게 자신의 공화정 이념을 재정초할 것인가가 밀튼의 당면 관심사가 될 거라는 점은 명백하다 하겠다.
이 런 전제에서 본고는
밀튼의 새로운 정치사상이 ꡔ투사 삼손ꡕ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볼 터인데, 먼저 달릴라(Dalila)와
하라파(Harapha)가 이 작품에서 가지는 의미를 따져 보겠다. 그 이유는 이 두 인물에 대한 묘사가 다소 희극적일지라도(아니 희극적이기 때문에)
이들의 태도와 수사에서 드러나듯, 밀튼이 영국혁명을 객관적으로 반추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본고는 혁명에서 소외된
영국민중이나 혁명이념의 신봉자들이라고 판단되는 코러스의 성격을 분석하는 한편, 삼손과 이들의 대화, 그리고 아버지 마노아와 삼손의 대화를 왕정복고
전후라는 역사적 배경을 통해 이해함으로써 밀튼이 품고 있던 공화정 이념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삼손이 다곤(Dagon) 신의 축제에
나갈 결정을 내리는 대목에서 구현된 밀튼의 새로운 정치사상의 의미를 따져보고자 한다.
3
달 릴라의 화려한
외양이 작품 내에서 다곤 신전의 장관과 긴밀히 연결된다(Loewenstein 134)는 점에서, 그리고 그녀의 이미지가
ꡔ계시록ꡕ에서 악의 결정체로 등장하는 바빌론 창녀와 연결된다(Lewalski 1058-59)는 점에서, 그녀의 공적인 성격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성격을 이스라엘을 구할 운명에 있는 남성적 영웅 정신을 거세하려고 위협하는 하나의 동인(agency)으로 파악하는 견해(Brown
203)는 이 작품을 영국혁명과 관련해서 읽으려는 우리의 논의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달릴라를 혁명가들에게 동조한 척하면서 그들을
배반한 장로파로 볼 수 있다는 주장(Hill, Milton 443)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삼손은 “가장된 종교”와 “위선”으로 그에게 다가와
그녀의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를 유혹하여 비밀을 발설하도록 한 다음 그를 곤경에 몰아넣은 달릴라의 행태에 분개한다. 그런데 이러한 알레고리적
해석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가 구사하는 수사이다. 이는 혁명기의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가장 현명한 사람들의
입에서
그렇게 회자되었던 저 근거있는 금언,
곧
사적인 견해들은 공익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근엄한
권위로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
압도하게
되었답니다.
At
length, that grounded maxim,
So
rife and celebrated in the mouths
Of
wisest men, that to the public good
Private
respects must yield, with grave authority
Took
full possession of me and prevail'd. (865-69)
이 대목은 다소 복잡하게
해석될 수 있겠는데, 우선은 “공익”이라는 공화정의 대의가 정치적 상투어로 쓰여 어떤 세력에 의해서나 전유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앞에서 논의한 바, 장로파, 독립파, 수평파 등 각각의 세력들이 저마다 공익을 대변하고 나선 세력이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런 상황에 대한 밀튼의 비판적 발언으로 들린다. 이 말이 위선자로 등장한 달릴라의 입을 통해 나온다는 점에서 그녀가 말한 이 “근거있는 금언”의
“근엄한 권위”는 그녀가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달릴라의 배반으로 표상된, 혁명이념에 대한 배반은 그 혁명이념에 의해 정당화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다곤 신을 모시는 필리스타인들이 왕정을 지지하는 영국인들이라면, 이들은 “사적인 견해들은 공익에 따라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한 셈이다. 삼손이 말하듯, 사실 달릴라는 공익이나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황금” 때문에 자신을 팔아 넘겼다. 따라서
밀튼의 비판의 초점은 장로파를 비롯한 혁명세력의 배반 행위 뿐 아니라, 그들이 그 배반 행위를 정당화하는 방식까지를 포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달릴라를 두고 밀튼의 전기적 이력과 결부시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삼손이 아내에게 배반당한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밀튼이 따온 이유는 아마도 밀튼의
장로파에 대한 배신감이 그만큼 심대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일 것이리라. 그렇다면, 삼손은 왜 달릴라를 아내로 맞아들였는가?
베 넷(Joan S. Bennett)은 삼손과 달릴라의 결혼이 삼손이 개인적 자유와 사익을 지키는 데 실패함으로써 결국 그의 공익마저도
옹호할 수 없게 된 계기로 파악한다(158). 따라서 삼손에게 이 결혼은 그 자신과 그의 명분을 배반한 ‘사적인 죄’가 된다는 것이다(159).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달릴라의 이미지 자체가 공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삼손이 달릴라와 결혼할 명분을 밝히는 대목에 영국혁명 초기의 밀튼의
정치이념과 정세판단이 스며들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밀튼이 견지했던 혁명 초기의 낙관적 전망은 영국이 “진리와 번영의 미덕이라는 영광스러운
길에 들어서면서, 후대에 틀림없이 위대하고 명예로운”(entering the glorious waies of Truth and
prosperous vertue destin'd to become great and honourable in these latter ages;
Flannagan 1020) 나라가 될 것이라는 ꡔ아레오파기티카ꡕ의 한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삼손이 이교도 여성과의 결혼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읽어낼 수 있는데, 여기에서 삼손은 자신의 행동이 신의 뜻에 따른 것임을 명백히 한다.
내 가 팀나에서 보았던 첫 여자는
부 모님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는 들어서 이교도의 딸과 결혼하려고 했다.
그 들은 나의 의도가 신의 의도임을 알지 못했다.
나 는 내면의 충동으로부터 그것을 알았고,
그 래서 이스라엘의 해방이라는,
신 이 나에게 부여한 일을 시작할
기 회로 생각하고 결혼을 서둘렀다.
그 여자가 믿지 못할 여자로 판명 나자,
그 다음으로 내가 아내로 맞이한 여자는
(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어리석은 바람일 뿐!)
그 허울좋은 괴물, 나의 철저한 덫
소 렉 계곡의 달릴라였다.
나 는 앞서의 행위, 그리고 똑같은 목적에서
그 것을 정당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The first I saw at Timna, and she pleased
Me, not my parents, that I sought to wed
The daughter of an infidel. They knew not
That what I motioned was of God; I knew
From intimate impulse, and therefore
urged
The marriage on, that, by occasion hence,
I might begin Israel's deliverance,
The work to which I was divinely called.
She proving false, the next I took to
wife
(O that I never had! fond wish too late!)
Was in the vale of Sorec, Dalila,
That specious monster, my accomplished
snare.
I thought it lawful from my former act
And the same end. (219-31)
코 러스가 삼손에게
배우자로 이교도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삼손은 그것은 신이 자신에게 이스라엘의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내부의
충동”을 통해 내려진 계시라고 답한다. 자신의 행위는 신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므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교도와의 결혼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는
“내부의 충동”의 현현인 셈이다. 삼손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신의 뜻과 연결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이 옳았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우리가 앞서서 살폈던
밀튼의 종교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는데, 그것은 예정설과 선민의식을 강조하는 캘빈주의와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아르미니아니즘의 결합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신의 계시를 기다렸다가 행동으로 옮기는 태도는 앞에서 힐을 인용하여 지적했던 크롬웰의 태도와 닮아 있다. 그런데
삼손은 달릴라와의 결혼을 굉장히 뼈아프게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결혼은 혁명초기에 가졌던 밀튼의 낙관적 전망이 어두워지는 계기라 할 수
있다. 이를 영국혁명기의 문맥에서 보면 스코틀랜드에서 발원한 장로파와 그들의 군대가 영국 혁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한편, 이를 신의
뜻으로 받아들였던 밀튼이 그들의 배반과 더불어 이 뜻의 실현이 좌절됨에 따라 혁명초기에 가졌던 낙관적 전망을 반성적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중에 논의하겠지만, 밀튼은 이 좌절을 신의 뜻이 잘못된 것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삼손은
잘못이 달릴라에게 보다는 자신에게 더 많다고 말한다.)
혁 명초기의 낙관적
전망에 대한 밀튼의 비판적 성찰은 그 수사적 어투에서 왕정복고 이후의 상황이라 짐작되는 하라파와 삼손의 대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탐색된다고 볼 수
있다. 명예에 대한 봉건적 관념을 가지고 있는 하라파는 밀튼과 그의 대의를 비웃었던 왕정복고 이후의 왕당파들이라고
볼 수 있고 ‘동맹파괴자’에 대한 언급은 군대가 찰스 1세를 처형함으로써 ‘신성한 동맹’(the Solemn League)을 어긴 것에 대한 장로파와
스코틀랜드인의 비난과 관련된다(Hill, Milton 435-36)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왕정복고 이후 밀튼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공격이
거세졌다(Knoppers 54)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삼손에 대한 하라파의 비난과 이에 대한 삼손의 대응은 밀튼의 공화정 이념이 나아가야 할
바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라파가 가장 심하게 비난하는 것은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증표이자 선물인 그의 힘과 그것의 원천인
머리카락에 대해서이다.
그 대는 가장 위대한 영웅들이 전장에서 지니고 다니는
빛 나는 무기들을 감히 비웃지 말지어다.
그 장식과 안전장치에는 마력을 불어넣어
너 를 강하게 무장시켰던 주술과
검 은 마법과 어떤 마술가의 기술이 없다.
너 는 그 마력을 힘이라고는 깃들 수 없는 너의 머리를 통해
태 어날 때 하늘로부터 너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꾸며댔다.
그 모든 머리카락은 성난 멧돼지나 호저의
등 줄기를 따라 곤두선 뻣뻣한 털과도 같은데 말이다.
Thou durest not thus disparage glorious
arms,
Which greatest heroes have in battle
worn,
Their ornament and safety, had not spells
And black enchantments, some magician's
art
Armed thee or charm'd thee strong, which
thou from Heaven
Feign'dst at thy birth was giv'n thee in
thy hair,
Where strength can least abide, though
all thy hairs
Were bristles rang'd like those that
ridge the back
Of chaf'd wild boars, or ruffl'd
porcupines. (1130-39)
하 라파는 선민의
징표인 힘을 “마술가의 기술”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무장에는 이러한 “검은 마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수사적
언변이 왕정복고기의 일반적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이라면 이 대목은 밀튼에게 신의 섭리를 행동으로 옮기는 과업이었던 영국혁명이 왕당파들에 의해 혹세무민의
마법이라고 비난받는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라파는 이렇게 삼손을 조롱하면서 삼손에게 맞대결을 신청하지만, 삼손은 여기에 대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내려진 신의 소명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이렇게 삼손의 목소리가 차분해진 이유는 코러스와 마노아를 만나 자신의 믿음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 혁명 원래의 대의(the Good Old Cause)에 대한 믿음이 공고해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하라파와의 대면에서
밀튼은 우상파괴자로서의 삼손의 분노를 강조하고 이러한 점이 작품 후반의 갑작스런 파괴와 관련된다(Loewenstein 135-36)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우상파괴의 행위가 삼손의 내적 성숙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임이 극적 구조 속에서 치밀하게 준비되어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4
그 런 점에서 삼손이
코러스, 그리고 마노아와 대면하는 장면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삼손의 하라파에 대한 성숙한 대응과
다곤 신전에 나갈 때의 삼손의 결단이 결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님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코러스는 한편으로는 영국 혁명에서 소외된 영국 민중들을 대변하는
성격을 띤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 “여전히 이스라엘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노예 상태에 있음”(Israel still serves
with all his sons; 240)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귀족정치에로의 회귀로 끝난 영국혁명이 일반 민중에게는 여전히 노예 상태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또한 예전에 삼손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 뿐 만 아니라 “신의 도리가 정당함”(Just are the ways of God; 293)을
여전히 믿고 있는 사람들인 걸로 보아, 이들은 밀튼이 왕정복고가 임박한 시점에서 규합하려고 애썼던 영국혁명 원래의 대의(the Good Old
Cause)를 지지하는 입장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극은 코러스의 절망과 불평 자체를 추인하기 보다는 거스른다(Knoppers
57)는 점에서 이들이 삼손에게 주는 ‘충고와 위안’은 매우 무기력한 것이 된다. 오히려 그들의 질문에 대한 삼손의 대답을 통해 밀튼이 혁명의
실패 원인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는 측면이 부각되는 것이다. 즉 코러스가 여전히 이스라엘은 노예 상태에 있다고 하자 삼손은 이스라엘의 위정자들이
자신의 “위대한 행위”(great acts)를 인정하지 않았고, 또한 이 말없는 행위를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would
not seem / To count them things worth notice)고 말한다(241-50). 여기서 밀튼의 비판의 초점은 아마도
당시 군정을 반대한 돈 많은 귀족 의회파, 그리고 이들과 연합해서 왕정복고를 촉진시켰던 몽크 장군일파에 있는 것 같다(Hill, Century
117-18) 또한 이 위정자들에 크롬웰을 포함시킨다면, 앞에서 지적했던, 국가교회의 존폐를 둘러싸고 벌어진 밀튼과 크롬웰 사이의 갈등이 흐릿하게나마
느껴지기도 한다. 왕정복고는 다음과 같은 삼손의 말에서 나타나듯이 밀튼에게는 노예제로의 복귀를 의미한 것이다.
그 러나 자유보다 속박을 사랑하는 것,
불 굴의 자유보다도 안락한 속박을 사랑하는 것,
그 리고 신이 자신의 특별한 호의로 그들의 해방자로
들 어올려진 자를 경멸하거나 시기하거나 의심하는 것,
이 보다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타 락하고 자신들의 악덕으로 노예상태에 이르게 된
국 민들 사이에서 말이다.
But what more oft in nations grown
corrupt,
And by their vices brought to servitude,
Than to love Bondage more than Liberty,
Bondage with ease than strenuous liberty;
And to despise, or envy, or suspect
Whom God hath of his special favor raised
As their deliverer. (269-75)
밀 튼이 보기에 왕정으로의
회귀를 찬성하는 영국인들은 “자유”보다는 “속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분투하여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속박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는 선민에게 신이 부여한 혁명의 대의를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에는 삼손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그
또한 달릴라의 “우레와 같은 말에 정복되어 . . . 침묵의 성채를 여자에게 내 줌”(vanquisht with a peal of words
. . . / Gave up my fort of silence to a Woman; 235-36)으로써, 신의 계율을 어겨 이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밀튼은 영국 혁명기의 영국인과 삼손의 유약함을 병치시키고자 한 것이다. 삼손은 한편으로는 대의명분의 상징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그 혁명의 대의를 좌절시킨 영국인의 유약함을 대표하는 인물인 셈이다. 따라서 삼손의 자책은 밀튼이 영국인의 유약함을 비판하고자 한 데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대의명분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마노아와의 대면은 세심한 독법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대목을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삼손의 분노와 자신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절망감의 토로로 읽어내기 십상인 까닭이다.
물 론 마노아와의
대면에서 펼쳐지는 삼손의 고백에는 영국혁명에 대한 밀튼의 깊은 좌절감이 배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실패는 “신에게는,
불명예와 비방을 가져다주었고, 우상숭배자들과 무신론자들의 입을 열어 놓았다”(to God have brought / Dishonour,
obloquie, and op't the mouths / Of Idolists, and Atheists; 451-53). 우상 숭배자들은 앞에서
인용한 “교회이치론”에서의 국교회 성직자들을 의미할 것이고, 무신론자들은 왕정복고 이후 국교회의 부활과 왕정복고를 도모하는 데 일조했던 장로파의
행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 상태에서도 삼손은 신과 다곤 사이의 싸움에서 신이 이길 것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밀튼이 왕정복고라는
현실 앞에서도 여전히 혁명의 대의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신이 분연히 일어나 다곤을 굴복시킬 것이고, 이 승리는
다곤의 모든 '전리품들'을 박탈시키고 “그의 숭배자들을 혼돈으로 실색케”(with confusion blank his Worshippers;
470)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이 전제될 때 몸값을 치러서 삼손을 구출하겠다는 마노아의 말은 단순히 아버지가 아들을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서,
왕정복고 이후에 새로운 혁명에 대해 구상하는 밀튼의 고민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러니 어떤 수단이 제공되던 그것을 거부하지 말아라
모 르긴 몰라도 그것은 너의 나라와 그분의 신성한 집으로
너 를 귀환시키기 위해 신이 우리 앞에 준비한 것이니 말이다.
거 기에서 신의 더 큰 분노를 막기 위해 기도와 맹세를 새롭게 하면서
너 는 그분께 봉헌할 수 있을 것이다.
Reject not then what offered means, who
knows
But God hath set before us to return thee
Home to thy country and his sacred house,
Where thou mayst bring thy off'rings, to
avert
His further ire, with prayers and vow
renew'd. (516-20)
마 노아는 삼손에게
하늘이 내린 수단을 거부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그것은 삼손이 자신의 고국과 천국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와 맹세를 새롭게 함으로써, 신의 분노를 막으라는 것이다. 이 때의 기도와 맹세는 물론 왕정복고 이후에도 여전히 영국인의 해방을
위해 고민하면서 혁명의 대의를 재확인하려는 밀튼의 다짐으로 볼 수 있다. 삼손이 “저의 생명력은 꺼져가고 희망은 바닥났습니다”(my
genial spirits droop, / My hopes all flat; 595-96)라고 절망할 때, 마노아가 그러한 생각들은 ‘공상’이
‘우울한 감정’과 섞여져서 만들어 내는 것이니, 이를 믿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또한 삼손은 고통이 육체에 국한되지
않고, “마음 속 가장 깊은 곳까지 내밀한 통로를 발견한다”(secret passage find / To th'inmost mind;
610-11)라고 말하는바, 이는 아마 왕정복고 이후의 좌절감을 극복하고, 새로운 혁명의 씨앗을 발견하려는 밀튼의 정신적 고뇌의 심대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를 통해 밀튼은 “내부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어떤 위안의 원천, 힘을 회복시키고, 쇠잔한 기운을 떠받치는 내밀한 활력소를 느끼고자"(feel
within / Some source of consolation from above; / Secret refreshings, that
repair his strength, / And fainting spirits uphold; 662-65)한 것이다. 이런 자기갱생과 깨달음을
통해 믿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삼손의 우상파괴 순간은 가장 격렬한 비전의 순간이 된다(Loewenstein 147).
하 라파의 퇴장 이후에
코러스는 삼손에게 인내의 힘을 강조하면서, 필리스타인의 축제에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나가지 말라고 하나, 삼손은
“어떤 중요한 대의”(some important cause; 1379)를 위해 신이 다곤의 신전에 나가게 했다고 설명한다. 이 때의 삼손은 ꡔ복낙원ꡕ(Paradise
Regained) 에서 그려진 예수의 모습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것은 밀튼이 인내를 통해 다다른 ‘내적인 낙원’에 만족하지 않고 지상의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왕정과 계속 싸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악을 통해 선을 아는’ 전투적 기독교인으로서 밀튼의 모습이고,
진정한 자유의지는 바로 신의 뜻을 실현시키는 것임을, 아니 신의 뜻이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로 나타남을 역설하는 혁명가로서의 밀튼의 모습인 것이다.
영국을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싸움은, 진리의 전제조건인 자유를 위한 투쟁이며, 바로 이 투쟁이 자유의지를 신의 뜻과 연결하는 과업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전을 부숴버리는 행위보다는, 삼손이 자신의 위험한 행위의 정확한 의미와 궁극적인 신의 뜻을 분명히 알지 못한 채 다곤 신의 축제에
나가려고 결심하는 장면에 이야기의 강조점이 두어진 것(Fish 579)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선 량한 용기를 가져라. 나는 내부에서
내 생각을 움직여 비범한 어떤 일을 하게 하는
어 떤 격렬한 동요를 느낀다.
나 는 이 전령과 함께 갈 것이다.
확 실히 우리의 율법을 손상시키거나
나 의 나실인 맹세를 더럽힐 어떤 것도 없다.
마 음속에 어떤 예감이 있다면
이 날은 어떤 위대한 행위 때문에 내 삶에서
특 별한 날이 될 것이거나, 아니면 마지막 날이 될 것이다.
Be of good courage; I begin to feel
Some rousing motions in me which dispose
To something extraordinary my thoughts.
I with this messenger will go along―
Nothing to do, be sure, that may dishonor
Our Law, or stain my vow of Nazarite.
If there be aught of presage in the mind
This day will be remarkable in my life
By some great act, or of my days the
last. (1381-89)
삼 손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원문의 “some”, “something”, “aught” 등의 단어는 이 정황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삼손은 자신의 행동이 “율법”에 불명예를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고, “맹세”를 더럽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삼손에게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대한 확신이 서 있는 것이다. 마음의 움직임, 실존적 결단, 행동에 이르는 과정은 마치 신의 뜻이 밀튼의 언어를 통해
삼손에 육화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따라서 삼손의 “무시무시한 운명(필연성)”(dire Necessity; 1669)은 밀튼이 보기에, 알 수 없는
힘에 의한 자유의지의 패배가 아니라 신의 섭리로서의 운명인 셈이다. 삼손의 죽음을 보고하는 사신의 말에서 강조되는바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신의
뜻이다. ‘불사조’(self-begotten bird)처럼 자신의 재에서 재생하여, 신의 뜻에 의해 선택된 자로서 인간의 자유를 위해 끝없이 투쟁하는
삼손의 모습이 바로 밀튼의 정치(혁명) 사상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이다. 삼손의 결심에는 신의 뜻에 대한 믿음 하에서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자신의
생각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비범한 어떤 것”(something extraordinary; 1382)에 적극 기투하려는 의지가 동반된다는 점에서
삼손의 마지막 행위는 정신의 혁명과 정치적 혁명이 하나가 되는 장면으로 읽어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의 우상파괴적 폭력이 스스로 구속되어
있는 이스라엘인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순교에 대한 새로운 숭배를 만들어 내는 데 전유된다는 견해(Knoppers 61)는 이 작품이
삼손과도 같은 결단을 영국인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극의 의도를 간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삼손이 신전에 나가려는 이유를 코러스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듯이, 신의 뜻과 자유의지를 매개하는 인과적 내러티브가 이 극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코러스나 이 극을 보는 영국인들이 삼손의 의식
심층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깊이 이해하고 삼손의 결단에 공감하지 않는 이상, 삼손의 행위는 모호하게 남아있기 마련이고 따라서 이런 저런 방식으로
전유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밀튼이 삼손의 말과 행동이 미래로 열려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이 극을 보는 영국인들에게 마노아처럼 삼손을 ‘기념비’로
만들지 말고 항상 ‘현재화’하라는 뜻에서 인 것이다.
5
물 론 밀튼이 살아
있을 때, 영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삼손에 체화된 밀튼의 정치사상은 영국혁명 만큼이나 역사적인
사건이었던 프랑스혁명을 목격하고 이를 열렬히 환영했던 낭만주의시인들에게서 부활함을 목격할 수 있는바, 대표적인 경우가 밀튼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려고
했던 블레이크(William Blake)이다. 블레이크는 당대의 대표적 우상파괴주의자인 페인(Thomas Paine)의 행동을 예수의 행동과 비교하면서
페인이 제도종교와 싸우고, 예수가 유대인과 싸울 수 있었던 원천이 ‘성령’에 있음을 주장한다. 또한 페인의 행동을 자신의 ‘원기 왕성한 재능’에
내맡김으로써 미덕과 정직의 확실성과 진실성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로 생각하는데, 이렇게 되면 성령과 재능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고, 이를 매개하는
것이 바로 ‘영감’이 된다(Erdman 613-14). 블레이크는 밀튼보다 자유의지를 더 강조하는 셈이지만, 블레이크가 당대의 제도종교에 의해
신의 뜻이 빈번하게 왜곡․전용되는 사태를 누구보다 절감했다는 사실과 밀튼의 선민의식을 자기중심성(selfhood)의 발로라고 비판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블레이크와 밀튼은 진정한 자유의지를 종교적․시적 충동이 실천적 행위와 결합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삼손의
이념적․정서적 고투는 블레이크적 삼손이라 할 수 있는 로스(Los)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띤다. 따라서 밀튼이 삼손을 통해 제기하려했던
문제는 특정한 역사적 국면의 문제만이 아닌, 인간의 인식과 실천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코러스의 마지막 정리 발언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마음의 평정”(calm of mind; 1761)을 흔들어 놓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주 제어: 영 국 청교도혁명, 삼손, 달릴라,
하라파, 마노아, 밀튼의 정치사상, 우상파괴주의, 신의 뜻, 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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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Samson Agonistes and Milton's Political Idea
JaeOhKim
This paper purports to read Samson Agonistes as a dramatic expression
of Milton's political idea. As Christopher Hill point outs, after the English
Revolution, the revolutionary group split over the question of profit sharing
into various factions whose political agendas were different according to
religious origin, social standing, and economical interest, etc. And “the Good
Old Cause” was at the stake of being forgotten in the midst of specious reforms
made by “the new royalized presbyterians." Since Milton regarded tyranny
in religion and tyranny in politics as both sides of one coin, he kept a
powerful critique of the default of the revolutionary group in the track of the
old government. In this context, Samson Agonistes can be read at once Milton's
response to the historical conjuncture of pre- and post- Restoration, and his
quest for a new political idea.
To begin with, we make a brief survey of the development of the English
Revolution and the shaping of Milton's political idea. And then, this paper
moves to the understanding of characterization of Dalila and Harapha, for they
are thought to be functional characters from whose attitude and rhetoric we can
identify Milton's reflections on post revolutionary milieu including the
Restoration. Next, we try to get at the kernel of "the Good Old
Cause" which Milton still entertained in the face of failure of the
English Revolution, by analyzing the dialogue between Samson and Chorus, and between
Manoa and Samson. Lastly, we probe into the meaning of a new political idea
embodied in Samson's determination to go to the temple of Dagon. What we note
here is that a political revolution is inseparable from a spiritual revolution
for Milton.
Key Words
the English
Revolution, Samson, Dalila, Harapha, Manoa, political idea, Iconoclasm, God's
will, free w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