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펜서의 프로테스탄티즘 :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의 역동적 관계*1)

 

김 호영 (숭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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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 1552-99)의 작품 특히 그의 ꡔ요정 여왕ꡕ(The Faerie Queene) 의 해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1)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서 신학적 역사적 고찰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ꡔ요정 여왕ꡕ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스펜서의 기본적인 이념적 성향의 특징을 탐구함으로써 ꡔ요정 여왕ꡕ 읽기의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스펜서는 전문적인 신학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매우 창조적인 기독교 시인이었던 스펜서는 자신의  프로테스탄티즘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16세기 후반 영국을 괴롭히던 여러 종교적,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 철학적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다.  인간 본성과 인간이 지닌 다양한 문화적 가능성에 대한 스펜서의 프로테스탄티즘적 이해는 그로 하여금  기독교적 맥락 속에서 실현 가능한 도덕적, 사회적 비전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 논문이 특별히 문제 삼으려는 용어는 스펜서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흔히 거론되는 기독교 인문주의라고 불리는 일종의 종교적 혼합주의(religious syncretism)이다. ꡔ요정 여왕ꡕ의 서문격인 “롤리에게 보내는 서한”(Letter to Raleigh)을 처음 읽는 독자는 스펜서가 기독교와 이교적 고전 문화 그리고 중세 시기의 작품들을 다양하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용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사도 바울의 서한이 그리스 로마의 종교, 철학, 역사, 문학, 신화, 심지어는 중세 로망스에 대한 언급과 함께 뒤섞여 나오기 때문에 독자는 자칫 스펜서가 기독교 복음과 이교적 고전 문화 그리고 가톨릭 중세 문화 사이에 어떤 긴장이나 갈등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기 독교 인문주의라는 용어는 종종 르네상스시기에 기독교와 고전 문화 사이의 다양하면서도 조화로운 통합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이 용어는 스펜서의 작품이 드러내주고 있는 기독교와  이교 혹은 세속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매우 복잡한 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관계가 지니는 복잡한 측면을 보다 분명하게 규명하기 위해서 본 논문은 먼저 중세 가톨릭 신학이 이룩한 기독교와 문화의 조화로운 통합의 형성과 붕괴 과정에 대한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의 통찰력 있는 분석에 대해서 논의함으로써 기독교와 문화의 통합에 대한 중세와는 전혀 다른 스펜서의 새로운 통합 방식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구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영국 종교 개혁과 엘리자베스 조 시대의 문화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니버의 생각이 과연 스펜서의 경우에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검증을 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은 스펜서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사상적 틀로 사용되어온 세 가지 종류의 기독교와 문화의 통합을 비판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스펜서의 프로테스탄티즘이 지니는 독특한 성격을 파악하려한다.

 

 

2

스 펜서의 ꡔ요정 여왕ꡕ을 이해하는 데 ‘변증법 신학’(Dialectical Theology)이라고 흔히 지칭되는 현대 신학의 한 흐름이 의외로 많은 빛을 던져줄 수 있다. 제 일차 세계대전의 엄청난 참화가 유럽 전역을 휩쓴 후 19세기의 자유주의적 신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일어난 이 신학 운동은 서구 문명의 요구에 기독교 복음을 조화롭게 적용시키려는 자유주의 신학의 노력에 강력히 반발했다. 변증법 신학의 가장 뛰어난 대변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 1888-1968)는 복음의 요구와 인간의 문화적 삶이 얼마나 다른 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종교란 인간의 문화가 안전하게 의지할 수 있는 확고한 토대가 아니라 오히려 문명과 그 동반자인 야만이 근본적으로 그 정당성을 의심받는 장소이다”라고 바르트는 주장한다(258). 복음과 문화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해소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바르트의 혹독한 비판은 그의 신학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종교 개혁의 결정적인 통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그 결정적인 통찰이란 인간은 설사 구원받았더라도 죄인으로 남으며(simul justus et peccator), 인간의 역사 또한 죄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므로 항상 신의 심판 아래 놓여 있게 된다는 것이다(Gilkey 257).

니 버는 바르트가 시작한 변증법 신학에 우호적인 현대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로서 종교 개혁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니버는 바르트와 달리 르네상스가 지닌 단점뿐만 아니라 그것이 지닌 긍정적인 성격 또한 충분히 이해하려고 한다. 더군다나 그는 루터주의가 지닌 문화적 패배주의나 칼빈주의가 종종 보여주는 반 문화주의적인 태도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Nature 2:157-212).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의미에 대한 니버의 비평적으로 균형 잡힌 견해는 그의 대표적인 신학서라고 할 수 있는 ꡔ인간의 본성과 운명ꡕ(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의 중요한 논점들 중의 하나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스펜서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의 역동적 관계를 조명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니 버의 기독교 사상사 이해의 핵심은 죄와 은총에 대한 성서적 프로테스탄티즘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니버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헬레니즘 신학이 죄를 인간의 유한성으로 규정하는 경향에 반대해서 죄란 인간이 피조물로서의 본성을 거부하면서 그가 부여받은 신의 이미지(imago dei) 로 표상되는 근본적인 자유를 오용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인간의 죄에 대한 해답인 신의 권능으로서의 은총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니버는 인간에 대한 신의 힘으로서의 은총 즉 의인(義認)(justification)이 인간에 '내재'하는 신의 힘으로서의 은총 즉 성화(聖化)(sanctification)와 동시적이면서도 역동적인 관계를 지니는 것으로 파악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의인(義認)으로서의 은총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인간과 신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수립하지만 성화(聖化)로서의 은총은 인간이 그의 참된 성품을 되찾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Nature 2:98-99). 따라서 인간은 죄인으로 남아 있지만 성스러운 존재가 되어야하는 의무를 역설적으로 동시에 지니게 된다. 니버에게 있어 의인(義認)과 성화(聖化)는 분리되는 순간 그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마는 신학적 개념들이다. 

니 버는 사도 시대(the Apostolic age)로부터 오거스틴(St. Augustine of Hippo, 345-430)에 이르기 까지 죄와 은총의 대립이라는 성서적 틀이 시간성과 영원성의 대립이라는 헬레니즘 신학의 틀로 대체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원죄라는 성서적 개념에 대한 오거스틴의 심오한 이해는 신학이 헬레니즘화 되어가는 경향에 있어 중요한 예외적 현상이다(Nature 2:134). 이 시대의 또 하나의 중요한 신학적 경향은 의인(義認)을 성화(聖化)에 종속시킴으로써 세례 후의 죄의 존재를 최소화하게 되어 도덕적 완전론(moral perfectionism)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드는 점이다.

이 러한 경향들은 죄를 인간이 본래 지녔던 완전함의 상실로 또 은총을 불완전한 인간 본성을 완성시키는 신의 힘으로 보는 죄와 은총에 대한 토미즘(Thomism)적2) 해석으로 완결된다. 죄는 더 이상 인간이 부여받은 신의 이미지의 타락으로 여겨지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은총과 인간 본성 사이의 긴장 관계가 간과되었다(Nature 2:139-40). 니버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의인(義認)을 성화(聖化)에 종속시키는 가톨릭 신학의 경향이 어떻게 고전적 인간의 이상인 자부심과 성서적 인간의 이상인 겸손이 갈등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가를 설명한다. 기독교 복음과 고전 문화의 갈등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중세적 통합’(the medieval synthesis)은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주장함으로써 먼저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고전적 개념(the classical concept of human self-sufficiency)을 비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고전적 개념을 끌어안게 된다. 왜냐하면 의인(義認)은 ‘과거에 저지른’ 죄에 대해서만 필요하게 됨으로써 구원된 인간이 성화(聖化)만으로 실제적으로나 원칙적으로 죄 없는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결국 공덕(merit)에 의한 구원이라는 교리와 구원된 교회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회학(ecclesiology)으로 귀착됨으로써 후에 가톨릭교의 부패와 그로 인한 종교 개혁의 등장을 초래하게 된다(Nature 2:140-5).

니 버는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은 “부분적으로 상호 모순적인 역사적 과정”으로서 앞에서 논의한 ‘중세적 통합’의 붕괴를 결정적으로 초래시켰다고 주장한다(Nature 2: 150). 르네상스는 인간 본성과 자연을 점차 완전함의 근원으로 여기게 되는 반면에 종교 개혁은 인간 본성과 자연을 근본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Nature 2:150). 르네상스는 은총을 주로 인간 속에서 작용하는 성화(聖化)로 보는 중세적 경향을 극대화시킨 나머지 결국은 은총이라는 개념까지 버리면서 인간 완성의 힘을 인간 스스로에게서만 발견하게 된다. 반면에 종교 개혁은 신의 은총을 주로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용서인 의인(義認)으로 이해함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문화적 혹은 역사적 업적을 죄의식 없이 추구하려는 시도를 근원적으로 봉쇄하려한다(Nature 2:150, 153).  

막 다른 골목에 이른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이념적 대립에 대한 니버의 대답은 창조적 사고의 한 본보기로서 ꡔ요정 여왕ꡕ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르네상스 기의 문학 작품들이 담고 있는 많은 난해한 도덕적 문제들에 대해서 적지 않은 빛을 던져준다. 니버는 중세적 통합과는 차원이 다른,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새로운 통합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 것은 성경에서 제시된 은총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아우르는 통합이 되어야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 통합은 한 편으로 인간의 역사적 삶은 미정의 가능성들로 차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모든 개인적 혹은 내면적 영적 상태, 모든 문화적 혹은 과학적 과제, 모든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서 인간은 새로운 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실현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의미 어느 쪽이든  삶을 완성하려는 모든 노력과 인간 역사 속에 내재하는 모순들을 넘어서려는 혹은 그것이 지닌 모든 타락을 최종적으로 제거하려는 모든 욕망은 버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Nature 2:207)

 

역 사가 지니는 무한한 가능성과 그 한계에 대한 니버의 예리한 시각은 ꡔ요정 여왕ꡕ의 전체적인 목적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스펜서의 시는 도덕적 완성을 향한 영웅적 기사들의 투쟁을 통해서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인 영국 국민에게 포괄적인 도덕적 사회적 비전을 제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스펜서는 결코 그 기사들의 업적에 대해서 만족하는 법이 없다. 제 1권의 기사인 레드크로스(Redcross)는 죄와 악마에 대한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를 만끽할 수 없다. 사실상 마지막 권이라고 할 수 있는 제 6권의 기사인 칼리도어(Calidore) 또한 인간 내면의 악의적인 성향을 의미하는 블레이턴트 비스트(the Blatant Beast)라는 괴물을 완전히 굴복시키는데 실패하고 만다. 따라서 스펜서는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힘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함으로써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상충하는 요구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보여준다. 니버가 제시하는 기독교와 문화의 새로운 통합 모델은 ꡔ요정 여왕ꡕ에 내재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매우 설득력 있는 가설이 될 수 있다.

 

 

3

영 국 종교 개혁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스펜서가 활발한 신학적 교회학적 토론들이 만개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한 서로 상충하는 다양한 태도들이 공존했던 시대에 살고 있어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시대 상황이 스펜서에게 기독교와 문화의 새로운 통합 모델에 대한 풍요로운 역사적 맥락을 제공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학자들은 영국 종교 개혁과 대륙의 프로테스탄티즘 운동 사이에 존재했던 긴밀한 관계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영국 종교 개혁이  사실상 정부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정치적 사건이라고 보는 전통적인 견해를  버리게 되었다(Seaver 272).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1536), 로버트 반즈(Robert Barnes,1495-1540), 토마스 크래머(Thomas Cranmer, 1489-1556)와 같은 1520년대와 153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초기 영국의 프로테스탄트들은 확고한 루터주의자들이었다. 틴데일의 ꡔ로마서 서언ꡕ(Prologue to Romans) 은 ‘신앙에 의한 의인(義認)’(justification by faith)이라는 루터의 교리를 영국에 소개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었다(Dickens 83). 칼빈주의 또한 메리 여왕의 박해를 피해 유럽에 건너간 프로테스탄트들과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 활동했던 가장 뛰어난 신학자들에게 깊이 영향을 미침으로써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의 종교 타협’(the Elizabethan Settlement)의 신학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39개조’(the Thirty-Nine Articles)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스펜서는 대륙의 여러 다양한 프로테스탄티즘이 계속 유입됨으로써 촉발된 활발한 신학적 논쟁을 목격하면서 프로테스탄티즘이 표방하는 핵심적인 사상들에 대한 맹목적 추종보다는 세심한 숙고를 통해서 그것들을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 ꡔ요정 여왕ꡕ 제 1권에 등장하는 에러(Error)라는 괴물의 끔찍한 모습은 열광적인 신학적 논쟁이 자아내는 소동에 대한 스펜서의 혐오를 보여줌과 동시에 스펜서가 살던 시기의 활발한 신학적 토론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준다.

엘 리자베스 여왕 치하의 영국 교회의 상황은 어떤 이유로 ꡔ요정 여왕ꡕ이 교회를 계속해서 개혁하려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지속적인 노력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하는 지를 잘 설명해준다. 폴 시버(Paul Seaver)가 지적하듯이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의 종교 타협의 놀라운 점은 이것이 거의 어떤 확고한 타협도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283). 성체 성사의 본질이나 초기 기독교의 이상적인 형태와 같은 극히 중요한 신학적 문제들은 그저 모호하게 진술되었다. 종교 타협이 선포된 1559년은 성직자들의 무지와 극도로 궁핍한 교회재정이라는 힘든 상황 속에서 이제 겨우 몇몇 혁신적인 주교들이 개혁을 시작한 해일뿐이다. 영국 종교 개혁은 스펜서가 생존해 있는 동안 힘들게 진행되었던 과정이었으므로(Collinson ix), ꡔ요정 여왕ꡕ이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의 종교 타협을 이상화하고 찬양하고 있다고 주장할 근거는 희박하다.

스 펜서가 과연 정확히 어떤 종교적 신앙을 지녔는가에 대한 논쟁은 지속적인 개혁이라는 문제에 대한 국교회의 비교적 융통성이 많은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물론 그 당시 국교회의 신학적 입장은 대체적으로 칼빈주의적인 성격이 강했으므로(Ashton 151) 신학적 관점만으로 스펜서의 종교적 입장을 파악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 ‘영국 국교회주의’(Anglicanism)와 ‘청교주의’(Puritanism) 사이의 신학적 갈등이 치열했음을 주장하는 일반적 경향에 대해서 디킨즈(A. G. Dickens)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종 교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지녔던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 영국인들의 대다수는 로 마 가톨릭교도나 국교회의 청교도들이었다. 1600년 경 혹은 그 후에도 비 청 교주의 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국교회 안의 영적 요소는 극히 미미했다. 사제들이 입는 중백의(; surplice)에 대해 혐오를 표방한 청교도들을 엄하게 다스렸던 휫기프트(Whitgift) 대주교조차 신학적인 관점에서는 그들과 다른 점이 없었다. (368)

 

디 킨즈의 주장은 대다수의 청교도들이 영국 국교회를 떠나려 하지 않고 교회를 내부로부터 개혁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의해서 뒷받침된다.3)

스 펜서의 종교적 입장을 그의 신학이 아니라 교회 개혁에 대한 그의 태도에 비추어 규명하려는 학자들의 노력은 ꡔ요정 여왕ꡕ에서 스펜서가 추구하는 종교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네이시프 셰이힌(Naseef Shaheen)과 앤씨어 흄(Anthea Hume)은 같은 증거를 사용하면서 약간씩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공통된 증거는 스펜서의 그린달(Grindal) 대주교에 대한 흠모와 궁정의 레스터 백작(Earl of Leicester)파와의 긴밀한 관계 그리고 아일랜드 총독이었던 그레이 경(Lord Gray)의 비서로 활동한 경력 등이다. 셰이힌은 이 세 사람이 청교주의에 대해서 품었다고 추정되는 호감에 대해서 계속 의문을 제기하면서 스펜서의 종교적 입장이 영국 국교회 내에서도 보수적 진영뿐만 아니라 보다 급진적인 청교주의로부터도 구별되는 저교회파 국교도(low-church Anglican)라고 주장한다(50). 한편 흄은 스펜서와 이 세 사람이 여왕의 동의를 전제로 계속적인 개혁을 추구하려했던 “주교제를 선호하는 온건한 청교도”(moderate episcopalian puritans)들이라고 주장한다(5). 반면에 존 킹(John N. King)은 이런 용어상의 차이에 너무 집착하는 것을 피하면서 스펜서가 대체로 지속적인 교회 개혁을 선호했던  진보적 프로테스탄트 운동에 속했다고 규정하는 것으로 만족한다(9). 지속적인 개혁에 대한 스펜서의 태도에 따라서 그의 종교적 입장을 규명하려는 이러한 노력들이 지니는 한 가지 장점은 독자들의 관심을 ꡔ요정 여왕ꡕ 전체를 관통하는 극히 중요한 주제인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 사이의 역동적 관계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프로테스탄티즘은 중세 가톨릭교가 저지른 오류들을 아주 강력하게 단죄했다. 루터와 칼빈이 과감하게도 기독교 복음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신앙에 의한 의인(義認)’이라는 교리 즉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신에게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상으로 이해하자 그들의 주장은 수도원이나 수녀원과 같은 종교 기관이나 성인 숭배, 순례 여행, 고백 성사, 면죄부등과 같은 가톨릭교회의 대중적인 종교 행위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종교 형태들은 단지 기독교 정신의 남용이나 미신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인간의 공덕”(Dickens 85)을 증대시키려는 죄로 물든 노력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정당화이자 우상 숭배적인 것으로 규정되었다(Althaus 17). 우상 숭배의 의미는 거짓 신의 이미지를 숭상한다는 사전적 의미 안에만 한정될 수 없다. 우상 숭배는 “인간이 그의 존재가 지니는 조건 지워져있고 불확실하며 의존적인 성격을 숨기면서 오히려 그것에 절대적인 실재라는 허상을 부여할 때”(Niebuhr, Nature 1:140) 반드시 발생하게 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상 파괴주의(iconoclasm)는 단지 우상적 이미지들을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고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는 모든 종교적 문화적 기관과 신념들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중세 가톨릭교회의 우상 숭배적인 관습들과 기관들에 대한 프로테스탄트들의 공격은 총체적으로 우상 파괴주의적이라고 묘사될 수 있다.

패 트릭 콜린슨(Patrick Collinson)의 우상 파괴주의적인 프로테스탄티즘과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의 영국 문화사이의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는 르네상스 기독교 인문주의나 중세적 통합과는 완전히 다른 영국적이고 프로테스탄트적인 기독교와 문화의 통합을 제시한다. 콜린슨은 그의 논점을 주로 예술이 지닌 정당성에 대한 프로테스탄트들의 다양한 견해에 대해서 언급함으로써 펼쳐나간다. 그는 영국 종교 개혁의 첫 번째 세기인 16세기는 크게 두개의 문화적 단계로 나누어 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첫 번째 단계는 대략 1580년까지의 시기로 우상 파괴주의적이라고 묘사될 수 있는 시기이다. 이 시기 동안 프로테스탄트들은 우상적인 종교적 이미지들을 공격하면서도 프로테스탄티즘의 원칙들을 장려하기위해서 기존의 예술 형식들을 적극적으로 개혁하고 이용하였다. 이 시기의 우상 파괴주의는 비도덕적 성향을 보이는 예술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었지만 예술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102). 두 번째 단계는 1580년경에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청교주의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과격한 청교도들은 예술 자체를 근본적으로 타락된 것으로 치부하고 격렬하게 그 정당성을 공격했다. 이 두 번째 단계를 콜린슨은 “우상 혐오적”(iconophobic)(171)이라고 부르는 데 16세기 후반의 영국 문화에 있어서 성스러운 영역과 세속적 영역의 명백한 분리를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콜 린슨의 연구는 스펜서가 ꡔ요정 여왕ꡕ에서 구현하려는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의 새로운 통합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우상 파괴주의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은 기독교 복음과 문화 사이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갈등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므로 종교적 혼합주의로서의 기독교 인문주의나 중세적 통합이 범할 수 있는 과오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형태를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건설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기독교 인문주의와 중세적 통합이 보여주는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수용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스펜서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1578-99)는 거의 정확하게 청교주의와 세속적 인문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우상 혐오적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온건한 프로테스탄트로서 스펜서는 문화를 근본적으로 죄로 물든 존재로 규정하는 청교주의의 주장과 문화 속에서 인간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의 개화를 보는 세속적 인문주의의 주장 사이의 첨예한 대립을 목격하게 된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 시인이었던 스펜서의 과제는  극단적인 청교주의나 세속적 인문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 그가 물려받은 우상 파괴주의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을 더욱 발전 변형시켜 새로운 형태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인문주의의 통합을 이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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ꡔ 요정 여왕ꡕ이 구현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의 역동적 관계는 이제까지 언급된 세 가지 유형의 기독교와 문화의 통합, 즉 기독교 인문주의, 중세적 통합, 우상 파괴주의적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을 통해서 좀 더 분명히 드러난다. 

기 독교 인문주의는 매우 애매하고 포괄적인 용어로서 기독교와 문화의 통합에 대한 다양한 방식들을 총체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긍정적 관점에서 일종의 종교적 혼합주의로 해석되든지(James E. Phillips) 혹은 회의적 관점에서 기독교와 인문주의의 서로 상충하는 요구들의 불안정한 조화로 받아들여지든지(Michael West) 기독교 인문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신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특히 종교적 혼합주의로서의 기독교 인문주의는 ꡔ요정 여왕ꡕ을 가득 채우고 있는 풍요롭지만 동시에 매우 혼란스럽게 보이는, 성서와 고전 문화로부터 끌어들인 다양한 이미지들의 혼합으로부터 일관성 있는 알레고리적 의미 체계를 추출하려고 노력하는 많은 스펜서 학자들에 의해서 선호되어왔다.  제임스 필립스는 스펜서가 일반적으로 신플라톤주의자들 특히 정통적인 기독교 신플라톤주의자인 필립 뒤 플레시(Philip du Plessis)를 추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의 핵심은 기독교가 다른 이교적 철학과 종교들과 신념이나 교리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Phillips 96-7).

한 가지 좋은 보기는 제 1권에서 레드크로스 기사가 새로운 예루살렘(the New Jerusalem)을 신비스럽게 목격하게 되는 장소인 “가장 높은 산”(the highest Mount)(1.10.53-4)이 화자에 의해서 이교적 시 정신의 상징인 파르나서스(Parnassus)와 비교되는 것이다. 필립스는 이 장면이 명백하게 스펜서가 성서의 묵시록적인 비전과 르네상스 신플라톤주의자들에 의해서 재발견된 이교적이면서 비의적(esoteric) 의식의 입문자가 경험하는 신비적 비전을 동일시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106). 하지만 두 가지 반론이 재기될 수 있다. 먼저 화자가 이 두 장소를 비교하고 있다는 것이 꼭 이 두 장소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스펜서가 성경과 이교의 이미지들을 병치시키는 것은 문화와 그의 예술이 지니는 가능성뿐 만아니라 그 한계에 대해서도 심오한 이해를 지녔다는 것을 보여준다. 레드크로스 기사가 ‘명상의 산’(the Mount of Contemplation)에서 목격하는 비전은 결코 그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궁극적인 진리를 획득하기 위한 신비주의자의 열렬한 시도는 사실상 바로 제 1권이 위선과 오만의 또 다른 형태로 규탄하는 심각한 죄이다. 더군다나 시인이 이 장면에서 그의 시적 비전에 대해서 특별히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기독교 복음에 봉사해야하는 성스러운 의무를 지닌 시라는 매개체에 대한 시인 자신의 깊은 신뢰와 아울러 문화의 한 형태로서 그의 예술이 지니는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겸허한 인정을 모두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종교적 혼합주의로서의 기독교 인문주의는 너무나 순진하게 복음과 문화의 상충하는 요구 사이의 긴장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한 편 어떤 스펜서 연구자도 시인이 겉으로는 열성적인 프로테스탄트로 행세하면서 실제로는 은밀한 가톨릭교도였다는 주장을 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세적 통합’이라는 모델은 복음과 문화의 목표를 일치시키지 않고 문화를 복음에 종속시킴으로써 종교적 혼합주의를 지향하는 기독교 인문주의에 불만을 가진 학자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우드하우스(A. S. P. Woodhouse)는 그의 영향력 있는 논문인 「ꡔ요정 여왕ꡕ에 있어서의 자연과 은총」에서 중세적 통합의 핵심적인 사상인 “신의 권능 아래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 사이의 조화와 모든 피조물들이 자연을 통해서 은총으로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경향”(81)이 ꡔ요정 여왕ꡕ의 주제와 구조를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스펜서의 시는 은총의 영역(제 1권)으로부터 시작 한다. 은총은 자연의 근원적인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1권 이후의 모든 권들은 주로 자연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이 권들이 표방하는 자연적 덕들은 그 자체로서 추구할 가치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신의 은총에 의해서 바로잡아져야할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각 권의 기본적인 패턴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제 2권의 기사인 가이언 경(Sir Guyon)은 자연의 힘에 의존하는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선한 가능성을 완전히 개발하게 되지만 여전히 그의 자연적 덕은 불완전함으로 그가 지닌 덕의 완성을 위해서 신의 은총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 러한 중세적 통합의 패턴은 고전적 지혜와 기독교적 계시, 이성과 신앙을 매우 만족스럽게 조화시키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티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이 지닌 자연적 가능성은 그의 유한한 본성을 초월하려는 열망의 근원으로서 필연적으로 오만이라는 죄로 변질 된다. 더군다나 은총은 그저 인간의 불완전함을 완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聖化) 인간 스스로의 힘을 절대화하는 모든 문화적 추구가 지니는 오만함을 준엄하게 심판하고 용서하는 신의 권능(義認)이다. 가이언 경을 위시하여 모든 기사들이 자신의 임무를 완성하지 못한 채 그들의 모험을 끝내고 있다는 사실은 자연을 은총에 종속시킴으로써 복음과 문화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중세적 통합의 방식이 ꡔ요정 여왕ꡕ의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최 근에 와서야 스펜서 연구가들은 스펜서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열렬한 프로테스탄트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그 사실이 시의 의미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지에 대한 물음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4) 흄이 스펜서의 시에서 발견하는 사상은 종교적 혼합주의도 중세적 통합도 아니다. 이 비평가는 자연과 은총사이의 긴장을 충분히 의식하면서도 고전 철학과 문학의 성과를 이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독특한 태도를 발견하다. 흄은 칼빈과 주요한 엘리자베스 조 시대의 신학자들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면서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를 통합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도덕의 함양과 죄에 물든 인간의 본성을 구원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하지만 어떤 기독교인이 신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면(義認) 그는 자신을 성스럽게 만드는 신의 힘(聖化)에 부응하여 도덕적 인간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61-6). 바로 이때 프로테스탄티즘은 고전 문학, 역사, 윤리학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게 된다. 물론 그 이유는 그것들이 스스로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도덕적 가르침을 위해서 덕이나 악덕의 이미지나 예들을 추출하고 재창조 할 수 있기 때문이다(69). 사실상 흄의 연구는 영국 종교 개혁이 겪었던 우상 파괴주의적인 단계에 대한 콜린슨의 연구와 많은 점에서 부합된다. 따라서 흄과 콜린슨의 연구는 스펜서의 시를 읽는데 적용할 수 있는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의 새로운 통합 모델을 제시한다.

그 러나 이러한 통합이 지니는 한 가지 약점은 앞에서 누누이 지적했듯이 시인 자신이 기사들의 덕이 완성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비관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적절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펜서는 각 권의 끝에서 그의 기사들이 도덕적 완성을 획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한사코 거부한다. 하지만 이 점에 주목하여 앨런 신필드(Alan Sinfield)가 주장하듯이(47) 스펜서의 시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인문주의의 어떠한 결합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좋은 보기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신필드의 주장은 니버가 강조하듯이 의인(義認)과 성화(聖化)라는 신의 은총의 분리할 수 없는 두 측면을 동시적으로 또 역동적으로 적용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그가 지닌 도덕적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신의 은총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바로 그 최선을 다하는 노력 속에 오만의 가능성이 함께 자라고 있으므로 그의 죄에 대한 신의 용서로서의 은총 또한 언제나 필요한 것이다. 스펜서가 추구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의 통합 방식은 인간이 지닌 무한한 힘에 대한 가능성과 동시에 그 타락 가능성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통해서만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다.

 

 

5

스 펜서가  ꡔ요정 여왕ꡕ에서 구현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의 역동적 관계는 인간 본성과 역사 과정에 대한 프로테스탄티즘적 이해와 문화적 가능성과 열망 사이의 변증법적 상호 작용에 의해서 구현된다. 이 상호 작용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질수 있다.

처 음 단계에서 프로테스탄티즘적 인간 이해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피조물로서의 본성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삶에 권능과 안전을 부여하려는 헛된 노력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티즘은 이러한 인간의 문화적 오만함을 우상 숭배로 단죄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은 이러한 인간의 죄에 대한 해결책을 그리스도가 몸소 보여준 십자가에서의 속죄에서 찾게 된다. 즉 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완전한 정의와 완전한 사랑으로서의 신의 역설적 성격이 드러난다. 문화가 단죄되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향 설정을 통해서 구원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 번째 단계에서 의인(義認)과 성화(聖化)로서 기독교인의 삶 속에서 약동하는 신의 은총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가 이룩하는 모든 문화적 업적에 내재하는 지속적인 타락의 가능성을 인식시킴과 동시에 그로 하여금 선에 대한 모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현하게끔 이끈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 기독교 종말론은 역사를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최후의 심판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는 역설적으로 이미 실현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그 불완전함과 타락을 최종적으로 완결하고 치유할 신의 심판에 대한 희망 속에서 진행되게 된다. ꡔ요정 여왕ꡕ의 각 권이 항상 완결되지 않고 끝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서사상의 특징은 따라서 이러한 스펜서의 프로테스탄티즘이 지니는 기본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거한다.    

ꡔ 요정 여왕ꡕ 제 1권은 레드크로스가 겪게 되는 일련의 중요한 사건들을 통해서 이 패턴을 매우 분명하게 따르고 있다. 그 중요한 사건들은 레드크로스 자신의 오만에 의한 타락, 성스러움의 저택(the House of Holiness)에서 그가 겪게 되는 근본적인 갱생, 위태로운 패배의 가능성에 항상 노출되면서도 신의 도움으로 승리하게 되는 용과의 싸움, 제 1권의 끝에서 유나와의 완전한 결합이 끝내 연기되고 마는 모습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스펜서의 작품이 그의 프로테스탄티즘이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문화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 관계를 매우 충실하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프 로테스탄트 시인으로서 스펜서의 과업은 프로테스탄티즘이 제공하는 통찰을 인간의 다양한 문화적 노력에 적용하려는 의식적인 시도라고 요약할 수 있다. 죄와 은총에 대한 그의 프로테스탄티즘적 이해는 프로테스탄트 영국의 종교적,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 과업이 내포하는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서 많은 빛을 던져준다. 기독교 복음은 근본적으로 문화의 오만함을 부정함으로 이 양자를 무리 없이 화해시키려는 기독교 인문주의나 중세적 통합은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접할 수 있었던 우상 파괴주의적인 프로테스탄티즘조차 비록 복음과 문화 사이의 근본적인 긴장을 인식하면서도 세속 문화를 개혁하는 데 있어서 지나친 자신감을 보이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스펜서의 걸작 ꡔ요정 여왕ꡕ은 세속 문화를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서 개혁할 필요성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동시에 그 과정이 결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임을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일깨워 주고 있는 작품이다.

 

 

주 제어: 스 펜서, 프로테스탄티즘, 문화, 기독교 인문주의, 종교적 혼합주의, 중세적 통합, 우상 파괴주의적 프로테스탄티즘, ꡔ요정 여왕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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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Spenser's Protestantism : the Dynamics of Protestantism  and Culture

 

Hoyoung Kim

 

This essay tries to define how Spenser views the complex relationship between the claims of Protestantism and culture. It first introduces Reinhold Niebuhr's insightful analysis of the development and breakdown of the medieval Thomistic synthesis of Christianity and culture, not so much to provide Spenser's intellectual milieu as to illuminate the kind of synthesis of Protestantism and culture Spenser seeks in The Faerie Queene, in which both man's obligation to fulfil his/her cultural potentials and the inevitable sinfulness of his/her pretensions to perfection are equally emphasized. Next, the ques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English Reformation and Elizabethan culture offers a concrete testing ground for whether Niebuhr's suggestion can be validly applied to Spenser's case. A concept of iconoclastic Protestantism prevalent during the Elizabethan age helps define Spenser's dynamics of Protestantism and culture. The third section of the essay criticizes three types of the synthesis of Christianity and culture frequently employed by Spenserians as intellectual frames of reference in studying Spenser's masterpiece. Both Spenser's ardent efforts to tackle the pressing moral and social issues of his time and his deeply pessimistic view of man's cultural achievements make it very hard to define his Protestantism statically. Only a dialectic interplay of Protestantism and culture does justice to Spenser's dynamic mode of thinking that constantly searches for feasible moral and social visions in the context of sin and Grace. 

 

 

Key Words

Spenser, Protestantism, culture, Christian humanism, religious syncretism, the medieval synthesis, iconoclastic Protestantism, The Faerie Queene


* 본 연구는 숭실 대학교 교내연구비 지원으로 이루어 졌음.

 

1)  스펜서를 그가 처한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중심으로 이해하고자하는 앤씨어 흄(Anthea Hume, 1-10)의 논의는 특이 이 문제를 접근하는 데 있어 좋은 안내 역할을 한다. 아울러 본 논문에서 필자는 특히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이라는 용어를 그것이 강조하는 신학적 메시지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교의 다양한 종교적 특징들에 대한 태도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하려고 한다. Douglass 284-293 참조. 문화(culture)라는 용어는 인간이 지닌 다양한 가능성을 통해서 이룩된 인간의 업적(human achievement)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려고 한다. Richard Niebuhr 29-30 참조.

 

2)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c. 1225-74)의 신학 체계.

 

3)  존 킹(John N. King)이 지적하듯이(9) 국교회주의(Anglicanism)라는 용어는 19세기에 로마 캐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 사이의 중도주의(via media) 를 주창했던 존 헨리 뉴먼이 주창한 것이다.

 

4)  특히 리차드 말렛(Richard Mallette)은 종교 개혁의 담론이 여러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 담론과 어떤 방식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 있는 지를 분석하고 있다(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