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서의 모국어 문학관, 텍스트, 명성:
" 명성의 전당"의 경우
황 준 호
초 서에게 부여된 “영시의 창시자”라는 특별한 명칭은 사실 그가 최초로 영어로 운문을 썼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그의 시학으로 인해 영어로 쓰인 시에 권위와 독창성이라는 개념이 최초로 도입되었다는 의미로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장시 "명성의 전당"(The House of Fame) 은 바로 이러한 명칭을 가능하게 한 초서 시학의 의미심장한 단초를 담고 있는데, 보이타니(Piero Boitani)의 표현을 빌자면, 이 작품은 초서의 경력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며, "명성의 전당"을 통해 우리는 초서가 어떠한 문화적 환경에서 어떤 시를 써 나갈지를 예측할 수 있다.1) 물론 아직 첫 번째 장시 "귀부인의 서(書)"(Book of Duchess) 에서 발견되는 프랑스 문학의 지대한 영향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다. 쉬퍼드(W. O. Sypherd)는 " 명성의 전당" 앞부분의 초서의 기원장면, 그가 사랑의 여신을 언급하는 대목, 디도와 에네아스의 사랑 이야기, 사랑의 이야기들을 듣고자 하는 “제프리”(Geffrey)의 의도, 초서의 명성의 여신 묘사 등등으로부터 고대 불문학의 연애시(love vision)의 자취들이 발견된다고 주장하는데,2) 일찍이 초서가 "장미의 로망스"(The Romance de la Rose) 같은 불어 작품을 번역하면서 불문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는 일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부인의 서(書)"와 "명성의 전당" 간에는 현저한 차이점이 드러나는데, 그 배후에는 단테(Dante Alighieri)의 영향으로 인한 초서의 모국어 문학에 대한 천착 및 온전한 텍스트를 통해 대륙의 선진 문학 전통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던 문학적 권위를 이루고자했던 초서의 야심이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 지만 이제 막 시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은 초서가 자신의 문학적 야심을 이룰 언어로 영어를 선택한 것은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영어가 지구 방방곡곡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초서 당대에 가장 권위가 높은 언어는 불어로, 초서가 인생 대부분을 보냈던 런던 거리를 거닐던 중 불어를 듣게 되는 상황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초서 역시 불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그가 학교에서 교육받은 언어는 모국어인 영어가 아니라 불어와 라틴어였고, 이후 교육을 받은 앵글로 노르만 왕실의 주 언어도 불어였으며, 나중에 봉직하게 된 영국 왕실도 프랑스의 언어와 예술 및 문학을 선호하고 있었다. 이런 취향을 지닌 귀족층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던 영국 ‘엘리트’ 시인들은 후원자들의 입맛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에 선뜻 영어를 주요한 시어로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령 초서의 당대 대표 시인 중 하나였던 가워(John Gower)는 그의 세 번째 주요 작품을 영어로 쓰긴 했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은 불어와 라틴어로 썼다.
여 기에 사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시 못 할 힘을 발휘하던 라틴어도 영어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한 요소로 작용했다. 주류 작가들은 시어로서 가지는 긴 역사, 특정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전문성, 그리고 잘 변하지 않는 성향을 들어 라틴어를 선호했는데, 동시에 라틴어 사용 이면에는 불어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이유, 즉 교회와 귀족으로 이루어진 지배층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라틴어 교육을 계급에 따라 제한했으며, 14세기 경에는 영국 교회에서도 평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설교가 시작되긴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라틴어만이 인정된 교회 언어였기에 그 자리를 위협하는 시도는 일체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3) 이런 정황을 이해한다면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가 라틴어 성서를 영어 문서 형태로 번역한 행위가 당시의 서열 사회에 도전하는 얼마나 심각한 행동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4)
불 어와 라틴어가 지닌 정치, 사회, 문화적 영향력 하에서 영어의 지위에 전혀 변화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13세기와 14세기에 역사를 서술하던 보수적인 성향의 역사가들로서는 간과하고 싶었겠지만, 상업에 종사하는 새로운 중산층 계급의 부상은 귀족층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이 새로운 권력층은 주로 영어만을 사용했다.5)또 한 1338년 이래로 발생하곤 했던 영불 전투 때문에 불어는 “적의 언어”라는 이미지가 강해져서 그 지위에 손상이 가기도 했기에, 14세기경 왕실, 의회, 귀족 가정, 그리고 법조계에서 영어 사용은 불어의 사용을 압도하기 시작했다.6)
그 렇지만 시어가 되기에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13-14세기 영어의 기능은 역시나 채 해결이 안 된 문젯거리였다. 왈리스(David Wallace)는 단테가 "천국" 편에서 보여준 눈부신 이탈리아 구사력과 14세기 이탈리아어의 기능과 대비되는 영어의 한계로 인해 초서가 분명히 때때로 절망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데,7) 사실 15세기 전까지만 해도 영어의 철자와 구문의 체계화는 채 완비되지 못해서8) 규범적인 글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서 역시 “필생 아담에게 주는 초서의 말”(Chaucers Wordes unto Adam, His Owne Scriveyn)을 통해 이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Adam scriveyn, if ever it thee bifalle
Boece or Troylus for to wryten newe,
Under thy long lokkes thou most have the scale,
But after my making thou wryte more trewe;
So ofte a-day I mot thy werk renewe,
It to correcte and eek to rubbe and scrape;
And al is through thy negligence and rape.9)
(1-7)
초 서 시대에 이미 직업적인 서기가 활동하고 있었고, 위 시를 보면 초서도 그 중 하나로 아담을 고용한 듯한데, 초서는 아담이 부 주의와 경솔함(“negligence and rape”)으로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복사하지 못한 채 많은 오류를 저지른다고 불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오류는 영어의 부정확성에다 서기들의 체계적 작업 결핍, 그리고 전문적인 인쇄 기술 미비로 인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관습적인 종류의 것이기도 했다.
전 반적으로 리차드 2세가 통치하던 시기, 영어는 귀족, 상류층에서 줄곧 미숙한 언어로 여겨져서, 초서의 후원자로서 "귀부인의 서(書)"를 호의적으로 받아준 존 오브 곤트(John of Gaunt) 마저도 정작 시 자체에는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다시 말해서 초기 영시는 “흔히 대중적인 오락형태”였을 뿐,11) 주류의 기호가 뒷받침해주는 심각한 장르에 이르지는 못했다. 실제로 1400년 이전까지 영어로 출판된 글들은 종교적인 소재에 집중되어 있던 탓에, 에드워즈(A. S. G. Edwards)와 피어살(Derek Pearsall)의 표현에 의하면, 영 어로 시를 쓴다는 것은 “14세기 주류 대도시의 문학적 풍토에 있어서 주변적인, 국지적 현상”이었고,12) 그 결과, 초서가 시인으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할 무렵, “스스로를 감히 시인이라고 일컬은” 영국인이 그의 전 세대에 존재하지 않았다.13)
이 런 까닭에 1372년과 그 이듬해에 걸쳐 초서가 당시 “유럽의 중심(heart)”으로 영국에 비해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 2세기 정도 앞서있었던 이탈리아의 플로랑스를 방문했을 때, 그곳 시인들이 사회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에 적잖이 놀랐을 것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14) 바로 이곳에서 초서는 그동안 런던과 플로랑스를 오가던 상인들과 은행가로부터 전해 들었던 단테의 "신곡"(Divina Commedia) 의 원고를 구하게 되고,15) 단테가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쓴 이 작품으로 커다란 영예와 명성을 지니게 되기도 했지만, 이 작품을 통해 이탈리아어의 가치와 문학적 지위가 향상되어 이전 라틴어가 차지하고 있던 위치를 넘보게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16)
사 실 단테의 모국어관은 "신곡"이 아닌 다른 글에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예를 들어 "자국어론"(De Vulgari Eloquentia) 의 취지를 밝히는 앞부분에서 단테는 언어를 모국어와 부차적인(“secondary”)언어로 나눈 후, 모국어가 더 고귀하기 때문에(“nobler”), 이탈리아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고 밝히고 있고,17) "향연"(Convivio) 에서는 언어 사용자와 언어간의 타당한 관계, 라틴어보다 월등히 높은 이탈리아어의 용이성, 그리고 모국어에 대한 자연스런 애정으로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 사용의 정당성을 자세히 피력하고 있다.18) 흥미롭게도 초서 역시 "천문학 논고"(A Treatise on the Astrolabe) 에서 자신의 모국어관을 드러내는데, 모국어가 그 언어 사용자가 알아듣는 데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기에, 영국인들에게 영어보다 더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언어는 없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This tretis, divided in 5 parties, wol I shewe the under full light reules and naked wordes in Englissh, for Latyn ne canst thou yit but small, my litel sone. But natheles suffise to the these trewe conclusions in Englissh as wel as sufficith to these noble clerkes Grekes these same conclusions in Grek; and to Arabiens in Arabik, and to Jewes in Ebrew, and to the Latyn folk in Latyn. (25-33)
이 대목에서 Chaucer의 모국어관과 동시에 그가 모국어 사용자들을 잠재적인 독자로 염두에 두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명성의 전당"에서 초서가 외국어를 모르는 청중을 염두에 둔 대목은 비록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의미심장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먼저 왕실 청중의 라틴어 실력으로 고려해보건대 초서가 "에네이드"(Aeneid) 의 시작부분을 영어로 번역할 필요가 없었을 뿐더러,19) 마치 자신의 새로운 문학관의 시작을 공표하는 듯한 아래 대목에서도 굳이 “영어”라고 명시한 것은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Now herkeneth, every maner man
That Englissh understonde kan,
And listeneth of my drem to lere.
(509-11)
이 러한 초서의 모국어 문학관은 단테로부터 동기를 부여받은 셈이지만, 정작 단테는 잘 알려진 바대로 많은 작품을 라틴어로 썼다. 이는 라틴어가 이탈리아어보다 과학과 철학적 글을 위해서 더 적절하다고 여겨진 탓인데 결국 단테에게 언어 선택은 때로 “편의성과 어느 정도 규범적인 문제”였고,20) 그런 까닭에 이탈리아어의 아름다움과 유용성에 대해 서술한 "자국어론"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라틴어로 쓰였던 것이다. 게다가 라틴어는 “이탈리아어의 문법적인 형태”로 이탈리아어와 완전히 다른 언어도 아니었다.21) 초서에게는 단테가 누린 이런 대안이 있을 수 없었다. 그의 생활 속에 불어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긴 했지만, 두 언어의 근접성은 이탈리아어와 라틴어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따라서 플로랑스의 모국어 문학 전통을 영국으로 가져오면서 초서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자신의 시를 통해 영어의 기능을 확대시키는 것이었다. 로빈슨(F. N. Robinson)은 “이탈리아어를 창시”한 단테와 달리, 초서는 새로이 어형변화를 만들어 내거나 바꾸지도 않았고 새로운 어휘도 보태준 것이 없다면서 초서가 “영어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했지만,22) 초서의 업적은 그의 운문 창작활동을 통해 영어의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했던 데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그 한 예가 "명성의 전당" 2권을 뒤덮다 시피 하는 독수리의 장황한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제프리”를 태우고 날면서 독수리는 그에게 음향이 어떻게 말로 변환되는지를 설명하는데, 그의 이론에 의하면 모든 물질은 그 무게와 면적에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가기에, 깨진 공기와도 같은 음향과 말은 명성(Fame)의 여신의 전당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먼저 과학적 지식을 영어의 운문의 형태로 풀어가는 기법은 초서 이전에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실험적인 것이기도 했지만, 킨(P. M. Kean)이 정확히 지적한대로, 이 기법이 놀라운 또 다른 이유는 기존 영시에서 볼 수 없었던 소재를 가져와 단순히 운문 형태로 설명하는 대상으로만 삼은 것이 아니라 작품 속 내용으로 융합시켜 작품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한다는 데 있다.23) 게다가 보이타니가 초서를 “그의 시대와 나라를 반영하는 이”라고 표현했듯, 독수리의 설명은 자연과학이 많은 발전을 보였고, 특히 공간, 기계, 동학, 수학적 물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던 14세기 영국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24)
이 렇듯 초서는 단테의 모국어관을 영국 사정에 맞게 도입했으되, 단순모방에서 벗어나 단테와 차별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 또한 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25) 가령 단테를 향한 그의 경외심을 고려해보건대, "명성의 전당"에 독수리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흥미롭게도 "신곡"에서 독수리가 단테를 나르는 것처럼, "명성의 전당"에서는 이름이나 생활면에서 초서 자신을 연상시키는 “제프리”를 독수리가 실어 나르는 구도가 눈에 띄는데, 이는 단테로부터 영감을 받았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와 같은 반열에 서고픈 초서의 야심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두 작품에서 드러나는 독수리의 상징성은 확연히 다르다. 가령 단테에게 독수리는 신의 정의와 계시의 상징으로서 특별한 권위를 지니고 있는 존재로,26) 작품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려 깊은 안내자로서 묘사되고 있다.
“Don't be afraid," he said. "Fronm here our course
leads us to joy, you may be sure. Now, therefore,
hold night back, but strive with all your force.27)
(Purgatorio 46-8)
이 에 비해 “Awak"(560)라고 외치면서 “제프리”를 깨우는 초서의 독수리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다. “제프리”는 독수리가 자신을 즐겁게 해주고 편안하게 느끼도록 배려를 한다고 묘사하지만, 그가 무거워 나르기가 쉽지 않다는 독수리의 불평을 들어보면 독자는 “제프리”의 말의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 . . “Seynte Marye!
Thou art noyous for to carye,
And nothing nedeth it, pardee!"
(573-5)
흥 미롭게도 단테의 독수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다스러운 초서의 독수리에 대한 “제프리”의 반응은 갈수록 시큰둥해진다. 즉 독수리가 장황하게 하고자 하는 말을 늘어놓은 후 의견을 구하면, “제프리”는 단지 “Yis”, “Wel”, “Nay”, “Nay, certeynly”, “right naught”, “What?”처럼 퉁명스럽거나 마지못해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을 주는데, 독수리는 분위기를 파악 못한 채 아랑곳 않고 다시 장황한 말을 늘어놓는다. 단테의 독수리를 연상시키되 예상치 못한 인물설정에 이런 어색한 분위기로 초서는 일종의 코믹한 정서를 연출하는데, 이런 유머러스함은 원숙한 후기 작품에서 초서 특유의 개성으로 빛을 발하게 된다.
이 와 같이 갖가지 불리한 언어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도 초서는 단테의 영향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모국어 시학을 추구해나갔는데, 이는 대륙의 문학적 전통과 궤를 달리하는 초서의 명성에 대한 시각 및 텍스트의 중요성과 연결되어 작품 속에서 복합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작품 처음 부분인 1권에서 “제프리”는 비너스의 유리 신전에 들어가 동판에 새겨져 있는 디도와 에네아스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의 전달은 여러모로 문제적이다. 이야기는 트로이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하는 에네아스의 여행으로 시작되는데, “제프리”는 이 대목을 벽에 적힌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I wol now singen, yif I kan,
The armes, and, also the man
That first cam, thurgh his destince,
Fugityf of Troy contree,
In Italy, with ful moche pyne
Unto the strondes of Lavyne."
(143-148)
위 짧은 대목은 이어지는 이야기의 전체 줄거리이기에 중요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프리” 자신이 벽에 새겨진 이야기의 충실한 전달자라는 인상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물론 이후에 직접 인용하지는 않지만, 그는 “I saugh”, “there saugh I”, “ther sawgh I”와 같은 문구를 반복하면서 있는 자신이 있는 그대로를 옮기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의 이런 자세는 디도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많은 변화를 보인다. 일단 그는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빨리 진행시키기 시작한다.
And, shortly of this thyng to pace,
She [Venus] made Eneas so in grace
Of Dido, quene of that contree,
That, shortly for to tellen, she
Becam hys love, and let him doo
Al that weddynge longeth too.
(239-44)
이 런 식의 “제프리”의 개입과 의도적인 삭제는 초기의 자세와는 매우 상이한데, 자신이 사랑의 예민한 감정을 어떻게 묘사해야하는지도 모르며 그리고 굳이 그 묘사를 여기서 해야 하는지도 의심이 나서, 디도와 에네아스 간의 사랑 이야기의 일부분을 그냥 넘어가겠다는 대목에 이르면, 과연 “제프리”가 이야기 전달자로서 얼마큼 신뢰할만한 존재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What shulde I speke more queynte,
Or peyne me my wordes peynte
To speke of love? Hyt wol not be;
I kan not of that faculte.
And eke to telle the manere
How they aqueynteden in fere,
Hyt were a long proces to telle,
And over-long for yow to dwelle.
(245-52)
다 시 말해서 어느 순간부터 “제프리”는 자신의 판단을 기반으로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의 전달에 개입, 특정 부분은 빼거나 확대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자신의 편집에 따라 스타일과 관점도 달리하고 있다. 즉 텍스트의 앞부분은 버질(Virgil)의 "에네이드"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에 “제프리”의 스타일도 버질 특유의 서사시적인 특징을 겸비했었다. 하지만 디도와의 로맨틱한 사랑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에네아스를 영웅으로 바라보는 버질과 여성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못돼먹은 놈으로 바라보는 오비드(Ovid)의 양립하기 힘든 시각 중 오비드의 평가를 따르기 시작하면서 스타일은 오비드 식으로 바뀌고 “제프리”는 디도의 편에 서면서 드러내놓고 그녀를 동정하기 시작한다.
. . . let us speke of Eneas,
How he betryed hir, allas!
(293-4)
그 렇지만 오비드의 스타일과 관점은 디도와의 이야기와 관련된 부분에서만 지속된다. 디도의 죽음 부분을 서둘러 마무리 짓고 오비드의 "헤로이디즈"(Heroides) 에 나오는 여인을 배신한 영웅들을 열거한 후 “제프리”는 다시 이전의 스타일로 돌아온다.
But to excusen Eneas
Fullyche of al his grete trespas,
The book seyth Mercurie, sauns fayle,
Bad hym goo into Itayle,
And leve Auffrikes regioun,
And Dido and hir faire toun.
(427-32)
이 후에도 “제프리”는 여전히 “sawgh I”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는 버질과 오비드에 근거한다고 밝히기도 하는데, 디도의 죽음에 관해 더 알고 싶다면 버질과 오비드의 저서를 읽어보라고 독자에게 추천하기까지 한다.
Whose to knowe hit hath purpos,
Rede Virgile in Eneydos
Or the Epistle of Ovyde,
What that she wrot or that she dyde;
(377-380)
다 시 말해서 자신의 이야기는 대륙의 문학전통과 그 권위에 기반하고 있음을 독자에게 주지시키고 있는데, 이렇듯 원전을 밝히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힘을 부여하는 예는 1권 뒷부분에서도 발견된다.
. . . which is longe to telle;
Which whose willeth for to knowe,
He moste rede many a rowe
On Virgile or on Claudian,
Or Daunte, that hit telle kan.
(447-51)
직 후 더 이상 관심 있게 전달할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다는 듯, “제프리”는 텍스트 나머지를 대충 요약한 후 이야기 전달을 마치는데, “제프리”는 줄곧 “Non other auctour alegge I”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그는 전달자로서는 자신의 색깔을 지나치게 드러내고 말았다. 사실 독자는 직접 인용된 첫 여섯 줄을 빼고 어디까지가 원래 텍스트의 말이고 어디까지가 “제프리”의 해석인지 알 길도 없다. 그의 혼란스런 이야기 전달은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데,28) 이를 초서가 처한 문학적, 문화적 척박한 상황과 연결지어본다면, “제프리”는 이미 전해져 내려오는 고전을 자신의 취향과 시각에 맞춰 각색, 편집하여 자신의 판본을 만들면서 버질이나 오비드의 권위를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제프리”는 전해져온 고전의 변하지 않을 듯한 권위를 사실상 자신의 권위로 차용하고 있는 셈이다.29)
“제 프리”의 시도는 궁극적으로, 나아가 그의 창조자인 초서 역시, 자신이 인용하는 버질이나 오비드처럼 사후에도 누릴 수 있는 명성을 얻고 싶다는 의중을 반영한다. 사실 초서 자신은 이런 심중을 숨기지 않았으며, 후기작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에서도 그는 대작가들과 어깨를 견주고 싶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Go, litel bok, go, litel myn tragedye,
Ther God thi makere yet, er that he dye,
So sende might to make in some comedye!
But litel book, no makyng thow n'envie,
But subgit be to alle poesye;
And kis the steppes, where as thow seest pace
Virgile, Ovide, Omer, Lucan, and Stace.
(Troilus and Criseyde, V. 1786-92)
그 런데 “제프리”의 이야기 전달방식을 귀납해보자면, 초서가 추구하는 명성은 대륙의 대가들이 추구했던 종교적인 가치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신 명성은 독자와 텍스트와의 관계에서 추출되고 있으며 따라서 작가의 권위와 명성 구축에 있어서 독자의 반응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초서의 ‘명성’에 종교적 색채가 희석되어 있다는 점은 초서와 단테가 구별되는 또 하나의 요소이기도 한데,30) 가령 단테의 "신곡"에서 독수리가 단테를 안내해 가는 곳은 천국으로 가기 전 영혼의 정화를 위한 연옥인데 반해, 초서의 독수리가 향하는 곳은 정신적, 종교적인 성격과 거리가 먼, 독수리가 설명하는 과학적인 방식과 세속적 가치가 어우러진 “명성”의 전당이다. 이런 속세적 가치를 시에서 다룬 것은 비단 단테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대륙의 문학전통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가령 캐롤 마틴(Carol A. N. Martin)은 복카치오(Giovanni Boccaccio)와 초서를 비교하면서, 비록 복카치오가 이교도 시인들을 언급하긴 하지만, 그의 시 옹호는 시적 영감과 신성한 숭고함이 연결되어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정신에 입각해 있다고 주장한다.31) 즉 시인은 신의 뜻을 추구함에 있어서 남다른 노력이 요구되기에 현상세계와 고립될 수밖에 없고, 그 대가로 명성과 권위를 부여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카치오의 시학에서 문학적 권위와 명성은 시의 신성함에 수반되는 것이지 그 목표는 아니며, 복카치오 자신이 이를 실천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초서에게 영감을 준 단테 역시 기독교 정신을 시의 주제로 삼았는데, "신곡"의 구분부터가 신이 창조한 대로 지옥, 연옥, 천당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그가 다룬 주제는 “인간보다는 신의 사랑”이었다.32)
이 에 비해 "명성의 전당"에서 드러난 초서의 종교색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가령 659행의 “an heremyte”와 같은 언뜻 보기에 종교적 색채가 드러나는 듯한 단어도 종교적 사색을 위해 세속을 등진 이가 아니라 혼자 책 읽고 안식을 느끼려 하는 세속적 은둔자에 불구하다. 라라 루폴로(Lara Ruffolo)가 "명성의 전당"에는 권능, 신약성서, 교부를 희구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글이나 작가가 등장하고 있지 않다”라고 지적하듯,33) 이 시에서 기독교적 색채를 찾기는 쉽지 않은데, 킨(Kean)이 “초서는 단테와 달리, 순수한 종교적 글을 제외하면 기독교 신학을 시의 소재로 끌어들이지 않았다”라고 주장한 바에서 볼 수 있듯,34) 종교적 색채의 결핍은 비단 "명성의 전당"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초서 시학의 일반적인 특징이 된다. 일례로 초서의 대표작인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독자가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것은 종교적 이상이 아니라 진솔한 인간들의 모습과 그들의 세속적 사회다.
이 렇듯 초서의 입장에서 세속적인 명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추구해야할 가치이기에, 초서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제프리”가 시 안에서 보여주는 명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은 시 해석의 어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명성의 전당에서 “제프리”는 명성을 얻기 위해 청원하는 무리들의 평판이 “명성”의 독단적이고 변덕스러운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보고 적이 실망을 하게 되고, 그래서 누군가가 “제프리”에게 명성의 전당에 명성을 얻으러 온 것이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단호하다.
I cam noght hyder, graunt mercy,
For no such cause, by my hed! (1872-5)
명 성에 대한 “제프리”의 거부감은 그가 “소문”(Rumor)의 전당에 갔을 때도 이어지고 있다. “재프리”는 “newe tydynges”를 더 접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갔지만 정작 그를 기다린 것은 수많은 군중들에 의해 확대되어 진위를 가리기 힘든 뜬소문뿐이었다. 발언자들은 각자 들은 소문을 제각기 다르게 해석하기 바빠서 그들이 다시 증폭시킨 내용들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어느 것을 믿고 어느 것을 믿어야말지 모를 지극히 혼란스런 상황이 연출된다. “제프리”는 마침내 바로 이런 소문들의 종착지가 명성의 전당이며, “명성”은 이 소문들을 다 접한 후 “ech hys name”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명성의 전당"에서 명성은 어떤 정당한 성취나 업적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신빙성 없이 돌고 도는 이야기들과 분별력 없는 기준에 근거한 우연한 평가의 산물로 묘사되고 있다.
하 지만 “제프리”의 시각이 그의 창조자의 의중을 따른다고만은 보기 힘들다. 보이타니가 일컬었듯 초서는 “시 전체를 명성에 관해 다룬 유일한 비(非)이탈리아 시인”이며,35) 한때 초서는 "명성의 전당"을 아예 “Book of Fame”라고 불렀기도 했다.36) 게다가 초기시가 소규모로 유통되었지만 초서는 청중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명성을 쌓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만 했다. 여기서 작가와 청중(독자)간의 시대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조이스 콜만(Joyce Coleman)이 연구했듯, 당시 시는 말로 전달해야만 하는 특성도 있던 탓에 시를 읽는 행위는 퍼포먼스 성격이 다분했으며, 그 결과 청중들과의 관계는 일방적이라기보다는 상호 긴밀한 의사소통적 성격이 강해서37) 청중들은 단순히 듣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전달자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38) 당연하게도 초서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의도한 청중들의 욕구와 능력”을 감안해서 각기 다른 작품에서 그들의 다양한 기대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39) 따라서 초서가 이후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유머나 냉소를 떠올린다면, 그가 현실적으로는 내뱉기 힘든 말을 “제프리”의 입을 빌어 발설함으로써 자신의 현실을 풍자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 작품 안에서 “제프리”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게 된다.
게 다가 “제프리”를 통해서 독자 혹은 청중 역할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제프리”는 시인 초서 자신의 투영이기는 하지만, 에네아스와 디도의 이야기를 전달할 때 보여준 태도에서 드러나듯, 전해져 오는 텍스트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소화하는 하나의 독자상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소문”의 전당에서 목격되는 대 혼란의 경우는 독자들이 권위있는 텍스트를 대하면서 생산해낼 수 있는 갖가지 다양한 해석들이 얽힌 극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는데, 진원지를 사실상 망각한 억측이나 헛소문과 달리, 독자들이 저자들의 취지와 다르게 해석하다고 해도 그 근원인 텍스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위를 수반한 텍스트와 그 저자들은, “제프리”가 인용했던 버질과 오비드처럼, 수많은 가능한 다른 해석들 속에서 계속 회자되면서 명성과 영생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 명성의 전당��을 통해 초서는 권위 있는 ‘시인’이 되려고 노력 중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작품에서는 독자의 권위 역시 강조되어, 독자가 없다면 텍스트와 저자들의 권위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재확인시켜주고 있기도 하다.40)
이 런 맥락에서 구구한 해석을 낳은 ��명성의 전당��의 미완성 결론은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소문”의 전당에서 명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목격한 “제프리”는 사람들이 처음 보는 어떤 존재로 인해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작품은 바로 그 순간 끝나버리고 만다.
Atte laste y saugh a man,
Which that y [nevene] nat ne kan;
But he semed for to be
A man of gret auctorite . . .
(2155-9)
“제 프리”의 서두른 이야기 요약 이상으로 돌연 마무리된 결론은 당연히도 다양한 해석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콜만(Coleman)은 시를 말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일관성으로 인해서 결론이 마무리되지 못했다고 주장했고,41) 클릿가드(Ebbe Klitgard) 역시 시의 공연적 성격을 들어, 현재의 결론 부분은 Book III이 하룻밤 공연 분량으로는 이미 충분해서 청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상태에서 중지된 부분인데, 이어지는 부분은 사라졌거나 쓰였더라도 청중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없었을 거라고 추 측하기도 했다.42)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겠지만, 초서가 무슨 이유로 이런 결론을 이끌어냈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가 않다. 분명한 점은 바스타(Edward Vasta)가 지적했듯, 뜻하지 않은 결론을 접한 독자들이 순간 �� 명성의 전당��이 라는 작품을 구술되는 “하나의 이야기로 뿐만 아니라 성문의 텍스트”43)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텍스트의 불완전성이 어떠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결론 부분을 앞서 설명한 초서의 환경과 연결지어 본다면, 아직은 체계화되지 못한 영어로 제대로 된 텍스트를 남겨서, 수많은 해석 속에서도 “a man of gret auctorite"로 영원히 남고자하는 초서의 의지가 반영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진 본만을 남기고픈 초서의 욕구는 앞서 언급된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에서 대륙의 권위 있는 작가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길 갈망했던 부분 바로 다음에서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And for ther is so gret diversite
In Englissh and in writing of oure tonge,
So prey I God that non myswrite the,
Ne the mysmetre for defaute of tonge.
And red wherso thow be, or elles songe,
That thow be understonde, God I biseche!
(Troilus and Criseyde, V. 1793-99)
온 전한 텍스트를 남겨 자신의 권위와 명성을 얻고픈 초서의 마음은 현대 작가의 열망과 다르지 않을 것이지만, 영어의 기능 부족 및 전통의 부재와 같은 열악한 당시 여러 조건들은 초서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장애물이었다. 비록 이 초기작에서 그의 대표작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와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발견되는 원숙함과 완성도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초서가 �� 명성의 전당��을 통해 그의 선대에서 누구도 그만큼 고찰하지 않은, 현대적인 감각의 독법이 요구되기도 하는 언어, 권위, 명성, 텍스트와 같은 문학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알 수 있다. �� 명성의 전당��에 서 초서가 “영시의 창시자”로서 권위 있는 영시 전통의 첫 씨앗을 뿌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
주 요어: 모국어문학, 명성, 권위, 텍스트, 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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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Vernacular Poetry, Text, and Fame
in The House of Fame
Joon Ho Hwang
Geoffrey Chaucer's usual appellation, "a maker of the English language and its poetry," does not mean that no writer before him had ever written literary works in English. Rather, it suggests that it was Chaucer who invested English poetry with authority as well as "originality." His achievements are especially striking when we consider the cultural circumstances in which he wrote. Certainly, he could have chosen French or Latin for his writing rather than English by following the general trend of elite poetry in fourteenth century England, and in fact, the influence of the Old French love-vision took a new shape in his first long poem, the Book of Duchess.
How then did Chaucer begin to create his characteristic English poetry, which marked the beginning of a recognizable tradition of English poetry, so that he could deserve such a privileged title? Despite the continuing French influence and its incomplete ending, the House of Fame provides significant clues to answer this question since it helps us see what kind of poetry an immature poet Chaucer could create under the influence of strong foreign inheritance. Dante Alighieri's influence, in particular, was crucial in that he provided Chaucer with a vision of the potential for vernacular poetry and poetic innovation that made Chaucer's poetry different from not only that of his English precursors but also that of the great poets of the Continental tradition. In the House of Fame, Chaucer's struggle with the nonstandard forms of English and the lack of its literary tradition demonstrates how he desired to build his own authority and fame with the newly embarking Chaucerian poetics that reached its acme in the Canterbury Tales and Troilus and Criseyde.
Key Words: Vernacular Poetry, Fame, Authority, Text, and Dante.
1) Piero Boitani, Chaucer and the Imaginary World of Fame (Cambridge: D. S. Brewer, 1994), 1.
2) W. O. Sypherd, Studies in Chaucer's House of Fame (NY: Haskell House, 1965), 12-20.
3) Margaret Aston, Lollards and Reformers: Images and Literary in Late Medieval Religion (London: Hambledon P, 1984), 196-97.
4) Russell A. Potter, "Chaucer and the Authority of Language: The Politics and Poetics of the Vernacular in Late Medieval England," Assays: Critical Approaches to Medieval and Renaissance Texts 6 (1991), 78.
5) Paul Strohm, Social Chaucer (Cambridge: Harvard UP, 1989), 1-10; Potter 85.
6) David Wallace, "Chaucer's Continental Inheritance: the Early Poems and Troilus and Criseyde," The Cambridge Chaucer Companion, ed. Boitani and Jill Mann (Cambridge: Cambridge UP, 1986), 19; Potter 84.
7) Wallace 20.
8) Derek Pearsall, The Life of Geoffrey Chaucer (Cambridge: Blackwell, 1994), 190.
9) Geoffrey Chaucer, The Works of Geoffrey Chaucer, ed. F. N. Robinson, 2nd ed. (Oxford: Oxford UP, 1957), 545-6. 초서 시의 인용은 이 판본을 따랐다.
10) Pearsall 180.
11) P. M. Kean, Chaucer and the Making of English Poetry, vol. 1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72), 2.
12) A. S. G. Edwards and Pearsall, "The Manuscripts of the Major English Poetic Texts," Book Production and Publishing in Britain: 1375-1475, ed. Jeremy Griffiths and Pearsall (Cambridge: Cambridge UP, 1989), 257-8.
13) Wallace 22.
14) Pearsall 102-104.
15) Pearsall 105.
16) 단테의 이탈리아어 사용이 초서에게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된 Kean, Wallace, Strohm, Potter의 연구를 참고.
17) Dante Alighieri, Dante in Hell: De Vulgari Eloquentia, trans. Warmen Welliver (Ravenna, Italy: Longo Editore, 1981), 43-45.
18) Dante, Dante's Il Convivo, trans. Richard H. Lansing (NY: Garland Publishing, 1990), 12-32.
19) Boitani, "Chaucer's Labyrinth: Fourteenth-Century Literature and Language," Chaucer Review 17 (1983), 200.
20) F. J. Snell, Handbook to the Works of Dante (NY: Haskell House Publishers Ltd., 1972), 84.
21) Snell 7.
22) Robinson, “Introduction,” The Works of Geoffrey Chaucer, xx.
23) Kean 2.
24) Boitani, "Chaucer's Labyrinth: Fourteenth-Century Literature and Language," 202-3.
25) Robin Kirkpatrick, English and Italian Literature from Dante to Shakespeare: A Study of Source, Analogue and Divergence (London: Longman, 1995), 39-51; Carol A. N. Martin, "Renaissance Poetics and Chaucer's House of Fame," Refiguring Chaucer in the Renaissance, ed. Theresa M. Krier (Gainesville: UP of Florida, 1998), 40-65; Lara Ruffolo, "Literary Authority and the Lists of Chaucer's House of Fame: Deconstruction and Definition through Proliferation," Chaucer Review 27 (1993): 325-41 참고.
26) Kirkpatrick 40-1.
27) Dante, The Divine Comedy (NY: Norton, 1970), 233. 단테 작품의 인용은 이 판본을 따랐다.
28) 참고로 최예정 교수는 초서가 버질과 오비드의 상이한 관점을 “병치”시킴으로써 “문학은 삶의 경험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에서 일면의 진실과 일면의 왜곡을 동시에 포함한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지적한다. 최예정, 「시 의 변호: ��명성의 전당��에 나타난 초서의 문학관」, ��중세영문학』6 (1998), 143.
29) 테럴(Katherine H. Terrell)은 이 작품에서 초서가 고전이 지니고 있는 권위를 해체하는 대신 독자가 지니고 있는 해석학적 권위를 꽤 중시여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Katherine H. Terrell, "Reallocation of Hermeneutic Authority in Chaucer's House of Fame," Chaucer Review 31 (1997): 279-90. 루폴로(Ruffolo) 역시 자신의 논문에서 “제프리”를 분석하면서 텍스트와 독자의 관계에서 독자의 역할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Ruffolo 330 참고.
30) 이 점에 관해서는 최예정 교수의 논문이 자세히 다루었다. 특히 146-7면 참고.
31) Martin 40-9.
32) Ruffolo 336-7.
33) Ruffolo 337.
34) Kean 2.
35) Boitani, Chaucer and the Imaginary World of Fame, 1.
36) Boitani, Chaucer and the Imaginary World of Fame, 14.
37) Joyce Coleman, Public Reading and the Reading Public in Late Medieval England and France (Cambridge: Cambridge UP, 1996), 177-8.
38) Pearsall 178.
39) Strohm 48.
40) 주 27 참고.
41) Coleman 178.
42) Ebbe Klitgard, "Chaucer's Narrative Voice in The House of Fame," Chaucer Review 32 (1998), 265.
43) Edward Vasta, "Narrative Pessimism and Textual Optimism in Chaucer's House of Fame," The Work of Dissimilitude, ed. David G. Allen and Robert A. White (Newark: U of Delaware P, 1992),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