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펜서의 "선녀여왕" 제2권에 나타난 물의 의미*




이 인 성





본 연구는 스펜서의 "선녀여왕" 제2권에 나타나는 주요 이미저리 중의 하나인 “물”의 상징적인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그 동안 "선녀여왕" 제2권에 나타난 물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었다.1) 그러나 그 동안의 연구는 주로 그 구조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거나, 물 이미저리에 존재하는 모호함을 지적하는데 한정되어왔다. 즉 하나의 고정된 암시가 주어지고 있지 않다는 논의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스펜서는 호머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 그리고 버질의 "에네이드"등의 대표적인 고전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물에 관한 양면가치를 "선녀여왕"제2권에서 반복해서 묘사하고 있으며, 그는 동시대의 신화작가들을 통해서, 그리고 과학적인 작가들과 탐험가들을 통해 그의 아이디어를 재발견하고 재확인해 왔다는 것이다.

필 자는 본 연구에서 이러한 일부 논의에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즉, "선녀여왕"에 나타난 물의 이미지를 전체적으로 분석한다면 양면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물의 이미지를 하나로 묶어 논의할 경우 한 가지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을 놓치게 된다. 즉, "선녀여왕"에서 물의 이미지가 가장 많이 나오는 제1권과 제2권의 경우, 각 권에 나타난 물의 의미는 다르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제1권에 나타난 물의 의미와는 달리, 제2권에 나타난 물의 의미는 아주 부정적이며 더 나아가 때로는 악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본 글에서는 바로 이러한 측면을 고찰하고자 한다.

제 1권의 마지막 칸토를 시작하고 끝내는 항해의 비유는 성결(holiness)을 향한 레드크로스(Redcross)의 항해의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가이언(Guyon)의 절제(temperance)를 향한 항해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가이연의 항해는 님프의 샘(Nymph's Fountain)에서 시작해서 쾌락의 정원(Bower of Bliss)으로의 바다 항해로 끝을 맺고 있다. 제1권의 레드크로스와는 달리, 제 2권에서 가이언은 페드리아의 섬(Phaedria's Isle)으로 그리고 아크라시아의 섬(Acrasia's Isle)으로 실제로 항해를 한다. 따라서 제2권에서의 항해는 제 1권에서의 항해보다 훨씬 더 그 중요성을 갖는다 하겠다. 스펜서는 가이언의 긴 항해를 독자들에게 준비시키고 있는데, 가이언의 배는 그 어떤 항해 못지않게 파도치는 위험한 바다를 항해한다. 넓은 의미에서, 항해에 대한 언급은 곧 가이언의 전 모험의 과정을 항해의 개념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제 2권은 제1권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제1권과의 연결고리들이 제2권의 앞부분에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특별히 흥미 있는 것은 그 주요 연결고리들이 물 이미지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 첫 번째는 우나(Una)와 관계된 것이다. 레드크로스가 글로리아나(Gloriana)에 대한 6년간의 봉사를 마치고 나서, 뒤에 남겨놓고 떠나야하는 여주인공에 대한 묘사에서 항해의 비유를 하고 있다:

               

    거기서 그녀는 영원히 보장된 평화를 누릴 것이다,

마 치 비바람을 견디어 낸 배가 행복의 해안에 도착한 것처럼.2)        


    Where she enioyes sure peace for evermore,

As weather-beaten ship arriu'd on happie shore. (II.i.2)3)    

                                          


이 직유는 제1권의 마지막 칸토의 시작과 끝에 나타난 비유들과 우나의 아버지의 비유들을 반향하고 있다. 비록 레드크로스에게는 그 항구가 단지 일시적인 곳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나에게 있어서 그 배는 그녀의 여행의 종착지에 정박을 한 것이다. 그 비바람을 견디어 낸 배의 이미지는 독자에게 제1권의 제3칸토에 있는 긴 항해 직유를 연상시키는데,  해변을 응시하는 지친 수부에 우나를 연결시키고 있다. 두 항해와 관련된 비유들은 해상생활의 고난과 위험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 즉 용을 죽이는 싸움은 어려움과 위험들로 가득했고 또한 완전한 성결의 추구는 수고와 역경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제2권에서의 절제를 향한 여행 역시 쉽지 않을 것임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두 번째 연결고리로 사용된 항해 비유는 레드크로스와 가이언을 연결시키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가이언의 믿음직한 안내자인 파머(Palmer)는 레드크로스의 성공적인 모험 여행을 축하하고, 이제 여행을 막 시작하려는 가이언에게 돌아선다.


    가이언, 신이 그대가 그대의 사명을 마치도록 잘 인도해서

그 대의 지친 배를 소망의 항구로 이끄시기를.


    God guide thee, Guyon, well to end thy warke,

And to the wished hauen bring thy weary barke. (II.i.32)

                                                  


절 제에 대한 추구는 성결에 대한 추구처럼 항해라는 관점에서 진행된다. 가이언은 레드크로스처럼 항해사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가이언의 임무는 단지 암초와 같이 숨겨진 고난의 바다를 가로지르고 북극성이 숨은 어두운 밤을 통과해서 배를 안전하게 인도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배를 위험한 파도들, 만과 바위, 그리고 소용돌이 사이에서 인도해 내는 것이다. 그의 임무는 계속되는 극단들의 사이를 통과해 항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모험의 본질과 통한다. 비록 가이언이 아직까지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가 아크라시아의 섬으로 실제로 항해를 하기위해 부름을 받은 제7칸토를 보면 파머의 항해 비유는 더욱 중요해진다.

제 2칸토에 의하면, 메디나(Medina), 엘리사(Elissa), 그리고 페리사(Perissa) 세 자매는 바닷가 바위 위에 지어진 성에 살고 있는데, 그 장소는 비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바위 위에 굳건하고 정교하게 건축된 확고한 자리는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반석 위에 지어진 집을 연상시킨다.4) 그러나 이 바위는 바다에 인접해있다. 비록 성이 강하고 단단하기는 하지만 바다 옆에 있기 때문에 파도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성안의 사람들도 바다로부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녀의 성처럼 메디나는 선천적으로 강하다. 그러나 그녀의 강함은, 그녀가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인간 행동의 극단들을 나타내는 그녀의 자매들로부터 계속적인 위협을 받는다. 엘리사는 경멸적인 우울증의 극단을, 페리사는 세속적인 쾌락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통 제되지 않는 정열의 힘으로서의 바다의 이미지는, 가이언이 엘리사의 연인인 허디브라스 경(Sir Huddibras)과 페리사의 연인인 산스 로이(Sans Loy)와의 싸움의 묘사에서 반복해서 나타난다 (II.ii.24). 가이언은 허디브라스 경의 경솔함과 황량한 우울증 그리고 산스 로이의 좌충우돌과 무법적인 욕망의 “두 대조적인 파도들”(two contrary billowes)인 두 감정의 극단 사이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폭풍우치는”(raging windes) “험한 바다”(troublous seas)를 항해한다. 그는 “두 등들을 타고서”(ride on both their backs) 그 자신을 구원한다. 그의 행위는 메디나의 행동의 패턴을 따르고 있는데, 그녀는 자매들을 공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두 자매들 중 더 강한 자에 의해 자신이 흔들리는 것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서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중재한다. 지나친 행동의 희생자들인 모단트(Mordant)와 아마비아(Amavia)를 복수하기 위한 여행에서 가이언이 따르는 행동 양식은 메디나의 성 안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에 나타난다. 그는 인간이 너무 쉽게 빠질 수 있는 “연약한 육체”와 “강한 열정”의 두 극단적인 상태 사이로 자신의 길을 항해해 간다. 이 항해 직유는 비유적인 수준에서 보면 쾌락의 정원으로 향하는 가이언의 항해에 대한 전조라 할 수 있다. 그의 배는 탐욕의 만(Gulf of Greediness)과 악한 비난의 바위(Rock of Vile Reproach) 사이를 항해하고, 또한 사치의 유사(Quicksand of Unthriftiness)와 부패의 소용돌이(Whirlpool of Decay)사이를 지나 항해해야  한다. 동시에, 그 항해 직유는 전투를 보다 광범위한 모험의 개념인 항해와 연관 시키고, 모험에 나선 기사 가이언을 항해사와 연결시키고 있다. 

제 2칸토의 마지막 연에서, 밤의 구절에 붙인 완곡어법은 제1권에 나타난 완곡어법과 같은 기능을 한다. 메디나는, 모단트와 아마비아에 대한 가이언의 이야기를 어떻게 쾌락의 독에서부터 절제까지를 배울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예로 이해한다. 모단트와 아마비아가 했던 죽음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궁정을 대단히 매혹시킨다:


밤 이 거의 세고, 이제 깊은 바다에서

    다가오는 뱀을 피해 급히 달아나던 오리온은,

    그의 비참한 이야기를 끝맺었을 때

    그의 불타오르는 머리를 가파른 곳을 향해 서둘렀다.



Night was far spent, and now in Ocean deepe

    Orion, flying fast from hissing snake,

    His flaming head did hasten for to steepe,

    When of his pitteous tale he end did make, (II.ii.46)

                                         


바 다의 파도 가운데서 그의 준마들을 소생시키는 퓌버스(Phoebus)의 완곡어법이, 용과의 전투 때까지 적당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레드크로스의 무능력에 대한 아이러니한 면모를 드러내는데 사용된 것처럼, 위의 완곡어법 또한 매우 반어적이다. 바다는 욕망의 상징인 뱀으로부터 도망치는 오리온에게 피난처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욕망들은, 사도 바울이 그의 편지들에서 비유로 사용하기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육체의 “가시”로 묘사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물은 아크라시아의 욕망의 가시로부터 도망치는 모단트에게 도피처를 제공하는데 실패한다. 그 우물은 오리온의 신화에 나오는 뱀이나 전갈만큼이나 치명적임이 증명된다. 또한 그 완곡어법은 앞에서 메디나가 언급한 욕망과 독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제 2권에서 여러 번 반복되어 나타나는 비유이다.

또 한 물의 비유들은 쾌락을 탐닉하는 무르고 산만한 인물을 표현하는데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인간 행동의 또 다른 극단인 분노를 표현하는 불의 이미지와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비유들은 무절제로 이끄는 지나친 감정 상태―그 감정이 어떠한 감정이든―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가이언의 분노(Fury)및 페돈(Phedon)과의 만남을 보면 한층 더 명확해진다. 파머가 가이언에게 말하기를, 분노는 오직 그 뿌리가 통제 하에 있을 때에만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그때에 가이언은 분노의  폭풍우를 잠재워야 하는 것이다.

페 드리아에서 우리는, 비록 물과 나무로 둘러 싸여는 있지만 완전히 자연계 밖에 사는 한 인물을 만난다. 그녀는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는 영향력 있는 것들―기후, 시간, 그리고 초자연적인 능력들―에 지배 받지 않는다:


    나는 바람이 어떻게 불든 걱정도 두려워하지도 않네,

빠 르게 불던 느리게 불던:

느 린 것과 빠른 것 둘 다 내 여행에 도움이 되니까.

거 만한 넵튠도 우렁찬 천둥의 제우스도

    나 의 일들을 바꿀 수 없고, 나를 결코 눈물짓게 못하네.


    Ne care, ne feare I, how the wind do blow,

Or whether swift I wend, or whether slow:

Both slow and swift a like do serue my tourne,

Ne swelling Neptune, ne loud thundring Ioue

Can chaunge my cheare, or make me ever mourne; (II.vi.10)


그 녀는 자연의 법칙들로부터 물러나 있으며 그녀 자신이 곧 법이다. 비록 가이언이 그녀의 배를 타고, 그가 잘못 인도되고 있다고 항의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정반대로 이야기한다.

그 녀는, 수부는 그의 길을 통제할 수 없다고 그에게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연의 법칙들, 바람, 날씨 등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의 조난보다 안전한 항구가 더 낫다는 속담으로 마치는 그녀의 말은 너무 진부해서 가이언으로 하여금 의심스럽게 만든다. 물론 그 경구는 아주 아이러니컬하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 항구는 결코 안전하지 않고, 바위와 모래톱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페드리아의 배와 바람과 조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완만한 호수의 상황을 고려할 때, 나태의 호수(Idle Lake)에서 조난당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사실 페드리아는 실제적인 바다의 위험들을 묘사하고 있다.

게 으름과 쾌락에 대한 그녀의 권유는 키모클레스(Cymochles)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는 반면에, 가이언의 마음을 방탕한 즐거움에 빠뜨려 익사시키려고 한 시도는 그녀의 배와 섬에 대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다. 제1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제2권에서도 인물들은 기사도의 실천과 방탕한 즐거움 사이에서, 즉 영웅적 행위에 헌신된 삶과 세속적 쾌락에 빠진 삶 사이에서 선택을 하도록 계속해서 요구되어진다. 그리고 방탕한 쾌락은 항상 물의 비유로 묘사되고 있다. 제1권에서 호색적인 삶, 세상으로부터 도피적인 삶, 그리고 게으른 삶을 상징하는 나태의 호수에 상응해서, 제 2권에서는 페드리아의 호수와 아크라시아의 샘 등 두개의 주요한 상징이 있다.

내 해(inland sea)라고도 불리는 그 호수는 모습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으며 게으름의 위험들에 대한 경고이다. 호수를 묘사하기 위해 선택된 형용사들은 호수의 외적인 특질과 도덕적인 본질들을 가리킨다. 그 호수는 회색이고 소름끼치게 한다는 의미에서 음산하다. 그 호수의 회색은 문자 그대로 호수의 짙은 안개―호수의 수원이 느린 데서 오는―때문이지만, 또한 비유적으로는 호수의 슬픔, 무력, 그리고 무관심 때문이다. 왜냐하면 회색의 상징적인 의미는 재와 죽음과의 연관성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호수의 음산함은, 호수로 모험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호수가 주는 도덕적인 파괴 효과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호수는 가이언이 쾌락의 정원으로 가는 길에 피해야만 하는 부패의 소용돌이와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 소용돌이 또한 음산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개끼고 소름끼치는 이중적인 면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나 태의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물 목(neck)이 "위험한 파편"이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문자 그대로 바위와 모래톱 때문에 위험하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나태의 호수와 페드리아의 섬으로 흐르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 호수의 해변은 문자적으로나 비유적으로 “얕은 모래”이다. 왜냐하면 페드리아와 그녀의 삶에 관한 모든 것들이 다 깊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 호수의 파도들은 문제투성이의 수렁처럼 무디고 큰 파도들이다. 제1권에서처럼, 수렁은 죄와 잘못된 삶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반면에, “문제투성이”란 단어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원은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노로 파도들을 물리쳐야만 한다. 이 파도들은 페드리아의 성격의 한 단면처럼 느릿느릿하다. 또한 그 파도들은 페드리아의 또 다른 성격인 명랑함과 밝음이 없다. 파도들은 게으름이 한 인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을 나타내는데, 이 극단적인 상황은 제 1권에서 나태함으로 구현된 극단적인 상황이다.

화 난 피로클레스(Pyrochles)에게 안식을 줄 수 없는 것은 그 호수가 나 태의 극 단적인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님프의 샘의 차갑고 순결한 물이 모단트의  화잘 내고 욕정적인 바커스(Bacchus)와 섞이기를 거절하고 또한 그의 아들의 손에 묻은 피와 섞이기를 거절했듯이, 나태의 호수의 침체된 물은 피로클레스의 내적인 갈망을 가시게 하는 것을 거절한다. 그들은 얼룩과 피를 씻어 낼 수는 있지만, 악과 분노의 화염을 끌 수는 없다. 페드리아처럼 그녀의 배와 섬은 자연의 법칙에 저항하고, 그래서 또한 그 호수도 자연법칙에 대항한다. 이 호수는 왜곡된 자연의 이미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 파도들은 매우 느리고 완만하며

진 흙으로 가득하며 충돌을 일으킨다,

그 들은 모든 무거운 것들을 떠받치며

티 끌조차도 바닥에 가라앉은 적이 없었다.


    The waues thereof so slow and sluggish were,

Engrost with mud, which did them foule agrise,

That euery weightie thing they did vpbeare,

Ne ought mote euer sinke downe to the bottoms there, (II.vi.46)


님 프의 샘과 프로세피나(Proserpina)의 정원에 있는 코키터스(Cocytus)의 물처럼, 나태의 호수의 물은 물의 자연적 기능을 수행하기를 거부한다. 나태의 호수에서 가이언의 모험들은, 페드리아가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그녀의 배에 태우기를 원치 않았던 파머와 그를 격리시켰다. 그의 “슬픈 안내자” 없이 그는 페드리아가 제안한 사랑과 쾌락의 유혹을 버텨낼 수 있었으나, 키모클레스가 제안한 분노와 원한의 유혹은 버텨낼 수 없었다. 폭풍우치는 분노의 바다를 잠잠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키모클레스의 쾌락적인 사랑과 가이언의 예의에 호소하는 페드리아이다. 이 은유는 앞뒤 문맥을 고려할 때 아주 반어적이다. 차가운 바다인 나태의 호수는 태풍에 의해 출렁일 수 도 없을 뿐 아니라 피로클레스의 분노를 잠재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제 7칸토를 시작한 서사적 직유는, 가이언이 다음 모험을 시작할 때 여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안개가 자욱하고”(foggy mistes) “구름낀 폭풍우”(cloudy tempests)와 “위험한 파도”(perilous wave)가 가득한 바다 비유를 확장 시킨다(II.vii.1). 교만의 집(House of Pride)에서 막 피한 레드크로스와 숨겨진 바위를 피한 배의 수부를 연결지었던 제1권의 제6칸토를 여는 항해 비유처럼, 제7칸토의 직유는 그가 피했던 위험들을 반복하는 동안의 영웅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동시에 그 직유는 맘몬(Mammon)의 동굴로 가는 가이언의 외로운 여행에 대한 기술과, 더 넓은 문맥에서는 쾌락의 정원으로 가는 그의 항해를 독자들에게 사전에 준비시키고 있다. 이 직유의 기능은, 항해사로서의 그의 역할 즉,  미덕―성결이든 또는 절제든―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수행되는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제2권의 도입 편에서 처음 소개된 항해자의 모티프는 제2권의  중간 지점에서 확장된 형태로 반복되며, 아크라시아 섬으로 향하는 가이언의 항해에 대해 기술한 제12칸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 6칸토의 도입 연에서 항해자의 이미지는 가이언이 나태의 호수를 건너는 여행의 여러 측면들을 반영하고 있다. 이 항해는 이성에 의해 인도되고 배의 진로를 결정하는 항해사와 제7칸토의 가이언과 쾌락의 정원으로 항해하는 선원, 그리고 노나 항해사 없이 단지 노 끼우는 쇠를 돌림으로써 배를 저어가는 “즐거운 수부”에 대한 암시적 비유이기도 하다. 또한, “위험한 파도”는 “위험한 홍수”와 “위험한 물”을 명백히 연상시키고, 동시에 바다를 묘사할 때 “위험한” 이라는 형용사가 5번 이상 반복되어 쓰인 쾌락의 정원으로 가는 항해를 기대하게 한다. 하늘도 안개비로 잔뜩 흐려 있다. 나쁜 날씨 때문에 수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변함없는 별”은 해도와 나침반으로 대체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은 “변함없는 별”을 의지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16세기에 많은 항해도구들이 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선원들은 여전히 항로 확인에 별 을 이용했다. 그들은, 별들 그중에서도 특히 제1권에서 레드크로스의 항해 직유의 북극성을 여전히 믿었다. 별은 가이언의 믿음직스러운 안내자인 파머에 의해 알레고리로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파머에게 키를 조정할 수 있게 해주고, 뱃사공에게는 노를 저어갈 수 있게 해주고, 또한 가이언의 배로 하여금 아크라시아 섬을 향하여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게 하는 길잡이이다. 절제의 알레고리 안에서 별은 실용적 지혜를 나타낸다. 가이언은 페드리아 섬 근처에서 그의 “별”인 파머를 잃어버리고, 맘몬의 굴속으로 혼자 가야만 했다. 해도와 나침반의 사용이 그로 하여금 맘몬의 유혹에 대항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만, 음악이 그로 하여금 정신을 잃게 만든다. 그가 기억하는 미덕의 위로는 한계가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가 이언이 이미 발견한 것처럼, 실용적 지혜를 유지하는 절제는 사실 나태나 지나친 열정으로 인해서 아주 쉽게 사라질 수 있다. 이 두 가지 극단들은, 그 물기 있고 습한 성질 때문에 안개비라는 직유와 또한 통제 불능의 화에 대한 익숙한 비유인 구름 낀 폭풍이라는 직유에 잘 나타난다.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인간의 이성을 파괴할 때, 그는 경험으로 배운 것들이나 그가 습득한 지식에 의지해야 한다. 지혜는 인간이 집중해야 하는 것이고, 변함없는 키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며,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이다.

부 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부패한 무절제의 결과라고 맘몬에게 말하는 부분에서 가이언은 샘의 비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II.vii.15). 가장 깨끗한 시냇물은 지나친 욕망의 오물로 더러워질 수 없는 님프의 샘을 떠올린다. 반면에 이 파도는 태만의 진흙으로 가득한 나태의 호수의 파도를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지나침은 곧 탐닉이다. 이 비유는 또한 냄새나고 검은 물결의 코키투스(Cocytus) 강에서도 나타난다. 제 2권의 다른 구절들에서 묘사된 물처럼, “부의 샘”은 인간의 무절제에 의해 왜곡되었기 때문에 물이 본래의 기능을 다 할 수 없는 자연의 타락한 상태를 나타낸다. 따라서 샘에 대한 맘몬의 묘사는 매우 아이러닉하다. 그것은 “선한 세상의 샘”이다. 돈이 세상에서 선의 유일한 근원이라는 맘몬의 주장을 반대하면서, 가이연은 항해와 항해자의 비유를 사용한다(II.vii.14). 가이언은 부가 국가나 개인의 악과 모든 소란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나운 비바람”(the troublous stormes)은 카스피인들과 아드리아인 들에게 알려진 두개의 가장 험한 바다의 “태풍”들보다 더 위험하다.

가 이언을 부와 권력에 빠지도록 시도한 맘몬의 실패 후에, 가이언이 프로세피나의 정원에 들어가면서 물의 이미지는 더욱 확장된다. 그것은 무절제의 한 특별한 형태인 지나친 부에 대한 사랑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가이언이 직면하는 무절제의 일반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지나친 야망과 지나친 나태, 타성 혹은 무기력 그리고 결국 우울증과 죽음으로 이끄는 것들을 포함하는 형태의 무절제는 모두 물의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이미 언급한 왜곡되고 타락한 자연의 주제도 물의 이미지들로 묘사되고 있다. 맘몬의 동굴은 무절제의 형태들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동굴은 사람과 자연에 대한 무절제의 영향들을 보여주고 있다. 제2권과 물의 이미지와의 관계는 아주 밀접하다. “괴어있는”(standing) 이라는 형용사는, 호수가 바로 죄가 거하는 곳인 일종의 심연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이 호수는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을 깨끗하게 하고 갱생시키는 물, 즉 거품이 일고 새롭게 하는 물이 아니다. 그 물은 모든 악의 화신으로서의 말레거(Maleger)에게 합당한 침체되고 형태가 없는 혼동의 물이다.

가 이연언 허디브라스 경과 산스 로이와의 싸움 그리고 페드리아의 섬으로부터의 외로운 출발을 묘사한 항해의 비유들은, 이제 아크라시아 섬으로 향하는 가이언의 실제 항해에 대한 묘사로 확대된다. 지금까지 기사의 모험의 단지 형이상학적인 표현들이었던 바다 여행들이, 제12칸토에서 비로소 서사적 실체와 알레고리적인 힘이 되고 있다. 스펜서는 율리시즈의 신화와 기독교 전통의 항해 은유를 결합시키고 있으며, 이를 통해 쾌락의 정원의 파괴로 끝을 맺는 절제를 향한 여행이라는 그 자신의 알레고리를 창조하고 있다. 바다 여행은 이전의 모든 모험의 사건들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항해 비유로 전환된다. 선원이 노를 젓고 파머가 인도한 가이언의 배는, 바다를 가로질러 제2권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 인간 행동의 두 극단을 나타내는 일련의 위험들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러한 위험들은, 지나치게 적극적이거나 수동적인 이미지들의 교차로 나타나거나, 몹시 활동적인 사람의 부와 명예에 대한 사랑과 너무 소극적인 사람의 나태와 부주의한 평안에 대한 사랑의 교차로 나타난다. 우리가 여행에 대한 기술에서 만나는 바다의 어려움들은, 각각의 새로운 위험의 알레고리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기여한다. 포효하며 격동하는 파도는 탐욕과 낭비와 같은 세속적인 무절제의 위험들을 에워싼다. 잔잔하며 거품이 이는 파도는 여행자들을 게으름과 쾌락으로 유혹하는 육감적인 자연의 위험들을 에워싼다. 비슷하게도, 파머와 선원의 역할들은 위험들의 성격에 따라서 교차한다. 일반적으로 의지와 동일시되는 선원은 자연 세계의 일부분으로 수부가 알아야만 하는 것들―만, 바위, 섬, 소용돌이 그리고 유사 등―을 인식하고 조언한다. 그것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힘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위험들 사이를 교차하는 것은 바로 사물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대표되는 위험들이다.

탐 욕의 만을 지나가는 배들을 삼키려고 보낸 "격동하는 파도"는 선원들을 두려움으로 가득하게 한다. 이 만에 대한 묘사는 부의 축적과 탐욕스러운 사람의 운명을 지적하기 위해 전적으로 주어진 삶의 악들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물의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선원은 온 힘을 다해 노를 젓는다:


    위험한 파도를 통과하는 텅빈 배가

    입을 크게 벌리고 그들을 산채로 삼키려고

    빨아들이는 무덤의 커다란 심연 속으로

헛 되이 노를 저으며 공포에 질려 소리 지르네.


그 들은 지나치면서, 음산한 입을 바라보네.

    그의 내부 깊숙이 바닷물을 빨아들이고,

    지옥보다도 더 무시무시해 보이는

    또는 지옥의 어둡고 무서운 구멍을 뒤덮은 (바로 그 입을).


    The hollow vessell through the threatfull wave,

    Which gaping wide, to swallow them aliue,

    In th'huge abysse of his engulfing graue,

Doth rore at them in vaine, and with great terror raue.


They passing by, that griesly mouth did see,

    sucking the seas into his entralles deepe,

    That seem'd more horrible than hell to bee,

    Or that darke dreadfull hole of Tartare steepe. (II.xii.5,6)

                                   


나 태의 호수처럼, 그 만은 “음산”(griesly)하다. 이 단어와 섬뜩함 또는 죽음과의 연관성은, “빨아들이는 무덤”, “산자를 삼키는”과 같은 표현들로 강조된 제6칸토에서 만큼, 그 묘사가 아주 강하다. 그 어느 누구도 심지어 악한 영조차도 결코 돌아올 수 없는 무시무시한 지옥과 만에 대한 비교, 그리고 “심연”(abyss), “지옥”(tartarus) 등과 같은 단어의 사용은 종말론적인 의미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만 (the Gulf)을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악한 비난의 바위이다. 만이 탐욕을 유혹하는데 비해, 바위는 방탕한 쾌락과 음탕한 삶을 추구하여 돈을 낭비하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방탕은 게으름과 호색적인 삶을 유도하기 때문에 악하다. 바위에 난파당한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건강도 해치게 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음탕한 생활은 영웅적 삶의 추구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낭비적인 삶이 미덕을 추구하는 삶과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악한 비난의 바위는 특히 무시무시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위로부터 배들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 배들을 난파시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위험은 절제하지 못하고 너무 가까이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하고 적합한 벌을 준다.

파 머가 아직도 가이언을 미혹하는 것을 단념하지 않은 페드리아를 책망한 후에, 배는 만과 바위의 위험과 비슷한 또 다른 두 가지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선원은 배에 탄 사람들과 파머에게 위험을 알려준다. 사치의 유사는 부를 축적하는데 그들의 힘을 쏟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한다. 부에 바탕을 둔 성공인 세상적인 성공의 변덕스러운 본질은 유사 주위의 바다의 묘사로 인해 더욱 강조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주변의 파도의 색깔이 움직이는 모래에 의해 바뀌곤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다 음에 나오는 위험은 바다 항해의 알레고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 위험은 선원이 피한 자연의 위험들처럼 그와 동일한 파괴적인 세력들을 나타낸다. 동시에 이 위험은 또한 슬픈 아가씨(Dolorous Maiden)와 인어(Mermaid)의 초자연적인 유혹들을 예시하고 있으며, 궁 극적으로는 아크라시아 자신의 유혹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사실 폭풍우와 괴물들은 아크라시아의 마법의 산물이다. 아크라시아가 가이언을 공격하여 파괴하고자 하는 것은 공포 때문이다. 화난 넵튠은 극한 두려움 가운데 높은 파도들을 몰아내는 듯하다(II.xii.22). 스펜서는 여기서 바다의 신조차도 두려워하고 있다고 묘사함으로써 비자연적이고 공포스러운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바다 항해에서의 과장법은 세 명의 항해자들의 공포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이 “뒤덮을 듯한 파도”(surging waters)는 비자연적이다. 바람도 없고 갑자기 폭풍우가 일어날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또한 교만의 상징이다(II.xii.21). 이것은 맘몬의 동굴에 있는 경멸(Disdain)에 의해 묘사된 극단적인 교만이다. 또한 이것은 탄탈러스의 교만과 거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품위 있게 사는데 만족하지 않고 신과 같이 되기를 원했다. 육지를 위협하는 탐욕스러운 바다의 이미지는, 중세의 설교자들에 의해 사용된 교만에 대한 전통적인 은유로서, 절제하지 못하는 교만의 비유로 나타난다. “부풀다”(swell)라는 동사는 이 상황에 맞게 매우 적합하게 사용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폭풍우로 인한 파도의 움직임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교만과 연관된 은유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 도가 험한 이유는 많은 괴물들이 나타남으로서 분명해 진다(II.xii.23,24). 여기서도 비자연적인 요소들이 강조되고 있다. 넵튠이 파도를 두려워한 것처럼, 자연(Dame Nature) 자신도 괴물들을 무서워하며 그들의 비정상적인 모습들로 인해 부끄러워한다. 여기서 괴물들은 공포뿐만 아니라 교만과 인간에 대한 나쁜 의도와 연관되어 있다. 이 괴물들과 심연의 괴물인 리바이탄(Leviathan)과의 관계는 분명하다. 또한 사탄이 처음 나타났던 악한 혼돈은 가이언과 그의 동료들에 대항해 일어난 파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괴물들은 모두 리바이탄의 변형들로서, 리바이탄은 아크라시아의 히드라(hydra)―제 1권에서 두엣사의 짐승으로 나타났던 잘 알려진 헛된 영광의 상징―에서 구체화된 교만의 괴물이다. 바다의 고래는 리바이탄을 지칭한다. 왜냐하면 리바이탄은 전통적으로 고래로 인식되어왔기 때문이다. "욥기"는 리바이탄의 크기에 대해 언급하며, 욥에게 리바이탄을 갈고리로 끌어 올릴 수 있는지 묻고 있다. 리바이탄은 교만으로 가득 차 있다(Job 41. 15). 다른 바다 괴물들도 모두 죽음 또는 공포와 연결되어 있다. 자연의 바다와 아크라시아의 마법에 걸린 바다의 차이가 괴물들을 두려워하는 파도의 의인화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괴물들은, 아크라시아와 같이 악마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발휘할 수 있는 악의 힘을 나타낸다. 파머는 이러한 악의 존재를 마법의 결과물이라고 확신 한다(II.xii.26). 막대기로 바다를 쳐서 이것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바로 그의 역할이다. 사실 파머의 행동은 파도를 잠잠케 한 예수의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이 이야기와 말레거의 통제되지 않은 정열 및 아크라시아의 괴물들의 절제되지 못한 정열의 알레고리 사이의 연결이, 그들이 나온 깊은 심연 속으로 되돌아가는 피조물들의 이미지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괴물들은 파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만이라는 악은 결코 영원히 제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리바이탄이 숨어있는 장소인 깊은 바다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가 이언이 아크라시아의 섬에 도착하기 전에 극복해야 하는 마지막 유혹은 바로 인어들이다. 그들은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복잡하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언덕에 둘러싸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높이 싸인 바위에 둘러싸인 “정지되고 고요한 만”에 살고 있다. 이 만이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II.xii.30), 그러나 파도의 특성으로 볼 때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이 만은 또한 나태의 호수의 “움직이지 않는” 파도들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인어들의 직업이 “계속되는 거래”인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잠시 이곳으로 방향을 돌려 만에 돛을 내리라는 인어들의 요청은 제2권 전체에 걸쳐 계속해서 사용된 이미지이다(II.xii.32). 인어들이 제안한 항구는 제1권에서 알키마고, 두엣사 그리고 절망이 붉은 십자에게 제안한 것과 같다. 이 곳은, 패드리아가 가이언에게 잠시 동안 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 “안전한 안식의 항구”(the Port of rest from troublous toyle)이다. 그러나 파머가 가이언에게 기대했던 “바라던 항구”는 아니었다. 인어들이 말한 “세상의 달콤한 곳”(The world sweet In)이라는 표현이 이 휴식의 본질을 말해주고 있다. (이 은유는 제1칸토에서 죽음에 대해 사용되고 있다.) 이 곳은 세상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달콤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인어들은 처음에는 항해자들을 유혹하고, 그 다음에는 그들을 죽이기 때문이다.

" 선녀 여왕" 제2권에서 물 이미지가 복잡한 이유는 항해의 이미지, 바다의 이미지, 샘의 이미지, 호수의 이미지 및 다양한 물과 관련된  이미지들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스펜서가 사용한 정교한 언어적 기교들에 의해 한층 더 강조되고 있다. 확장되거나 축소되고 때로는 한 단어로 축약된 은유들, 직유들, 완곡어법, 그리고 샘, 바다, 호수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이 알레고리를 떠받치는 확장된 하나의 의미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제1권에서 레드크로스의 모험 여행의 배후에는 항해와 항해사의 비유가 있는데, 제2권에서는 이러한 물 이미지가 도처에 가득하다. 제2권에서 물은 거의 배타적으로 부정적이거나 악의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다. 그 유일한 예외는, 시내에서 자신의 목을 축이는 레드크로스에 대한 한 줄 묘사와 생명의 샘에 필적하지 못하는 고여 있는 호수에 대한 한 줄 묘사뿐이다. 그러나 제2권의 관심사는 선한 물과 악한 물에서 유추할 수 있는 악과 미덕의 대립이 아니고, 무절제의 두 양식의 대립이다. 가이언이 행한 알레고리적인 여행의 단계들은 물의 이미지들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 패턴은 전체적인 시적 짜임새에 구조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서로 얽혀서, 스펜서가 "선녀 여왕"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virtuous and gentle discipline"을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숭 실대)




주 요어: 에드먼드 스펜서, 선녀 여왕, 가이언, 물, 바다, 항해,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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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Significance of Water

in Spenser's Faerie Queene, Book II


Insung Lee


The final canto of Book I of The Faerie Queene foreshadows Guyon's voyage towards temperance in Book II. Guyon's quest begins with the family at the Nymph's Fountain and ends with his sea voyage to the Bower of Bliss. In Book II this voyage-motif is significant not only on a metaphorical level, but also on a narrative level, mainly because Guyon actually undertakes a voyage by water.

In Book II the water imagery is pervasive. Of these, one is given canto-length treatment―the Idle Lake―and the other occupies half of the longest canto in the first two books--the sea voyage to the Bower of Bliss. Water is used almost exclusively as an image of evil in Book II. This water imagery is woven both structurally and symbolically into the poem.




Key words: Edmund Spenser, Faerie Queene, Guyon, water, sea, voyage, temperance


* 본 연구는 숭실대학교 교내 연구비 지원으로 이루어졌음.

1) "선녀여왕"의 물 이미저리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들은 다음과 같다. 그레이스 랜드럼(Grace Warren Landrum)은 "선녀여왕"의 물의 이미지에 있어서 “특정한 더 많은 시적 문체” 즉, 형용사, 은유, 환유, 과장, 의인화, 직유 그리고 상징적 은유 등을 언급하고 있다. 로즈먼드 튜브(Rosemond Tuve)는 이미지가 그것 자체로 끝나는 것으로 여겨지기 보다는 더 넓은 과정 속에 단위 혹은 요소들로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이 알았고 그 이미지를 사용하였던 것과 같은 것으로 이미지들의 운율적 기능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선녀여왕"의 “이미지의 구조”를 제목으로 한 논문에서, 노드롭 프라이(Northrop Frye)는 스펜서의 이미지를 “두 주요 원칙”, 즉 하루와 계절의 진행과 같은 자연적 주기의 이미지와, 미덕의 상징들이 시각적 또는 악마적 상대 물에 의해 풍자되어 나타나는 “도덕적 변증”으로서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그 모든 상징이 양면적으로 사용되며 문맥에 따라 덕스럽거나 악마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본 논문에서 스펜서의 작품 번역은 저자가 했음을 밝힌다.


3)  본 논문에서 스펜서의 작품 인용은 Edmund Spenser, The Faerie Queene, ed. Thomas P. Roche, Jr. (New York: Penguin Books, 1978)에서 했음을 밝힌다. 


4)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바위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쳐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집은 바위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세운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쳤을 때 그 집은 쉽게 무너졌는데 그 무너진 정도가 심하였다.” (마태복음 7장 24-2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