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르네상스와 까몽이스(Camões)*




송 필 환





1. 서론


  1498년 바스꾸 다 가마 (Vasco da Gama)의 인도항로 개척은 진정한 유럽의 경제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이로 인하여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은 위대한 항해시대를 이끈 유럽의 가장 중요한 국가로 자리 잡게 된다. 동 마누엘 (D. Manuel, 1495-1521)의 통치기간 동안 리스본은 유럽과 아시아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되었고 국제 무역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그 중심 축을 옮기게 되어 이탈리아의 도시들의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문화적 관점에서 그 중심은 아직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남아 있었고 인문주의자들의 사상과 르네상스의 기운은 그곳으로부터 포르투갈에 전해지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많은 왕자들이 이탈리아의 학자들에 의해 교육을 받았고 왕정은 프랑스의 대학에 장학금을 지불하며 유학을 장려하였다. 또한 개종한 유대인들 (Cristãos Novos)과 독일계 후예들의 주도로 시작된 출판업의 발달은 비록 급속한 진전은 아니었지만 15세기 후반부터 다양한 서적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으며 특히 포르투갈의 구전 시가를 정리한 ��일반 시가집�� (Cancioneiro Geral)1)의 출판은 궁정의 관심을 문학으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유럽 중심 국가들의 선진 문화와 사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인도항로의 개척과 연이은 극동으로의 해양개발과 아프리카, 아메리카대륙의 이국 문화를 수용함에 적극적이었던 포르투갈에 까몽이스 (Camões)라는 위대한 시인을 탄생하게 하였다. 드라마틱한 삶과 해박한 지식, 풍부한 경험의 시인은 포르투갈의 르네상스를 꽃피우며 포르투갈 최고의 고전주의 시인이라는 영예를 부여받았다. 그의 대표적 서사시인 ��우스 루지아다스��(Os Lusíadas)는 작품성에 있어서도 르네상스시대 최고 걸작으로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문화를 소개하는 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높게 평가받고 있다.



2. 르네상스의 도입과 발전


  새로운 ‘이탈리안 스타일’ (estilo italiano)의 문체를 포르투갈에 도입하는데 가장 큰 공로자는 프란씨스쿠 드 싸 드 미란다 (Francisco de Sá de Miranda)였다. 꼬임브라 (Coimbra) 대학에서 수학하고 ��일반 시가집��의 편찬에 참여하였던 그는 5년 동안 (1521-1526)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당시의 르네상스 시인들2)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으며 포르투갈로의 귀국 길에 스페인의 시인들3)과도 교류하게 되었다. 그는 목가시 (écloga), 십음절 시 (o verso decassílabo), 쏘네트 (soneto), 고전극과 비극 (comédia clássica e tragédia) 등 일연의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게 되는데 이러한 형식은 ‘메디다 벨랴’ (Medida Velha)라고 칭해지는 기존의 헤돈딜랴 (redondilha), 글로자 (glosa), 빌란세뜨 (vilancete) 같은 5음절 혹은 7음절의 전통적 시 양식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메디다 노바’ (Medida Nova)로 명명되었으며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당시 포르투갈 문학의 특징적인 부분은 많은 시와 희곡들이 스페인어와 혼용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중 언어주의 (Bilinguismo)는 당시 귀족사회의 유행이었고 새롭게 도입된 이탈리아의 형식과 함께 상당 기간 유지되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문인들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이념을 통해 ‘청신체’ (Dolce stil Nuovo)에 부합되는 포르투갈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자국어의 정리에 힘쓰게 된다. 싸 드 미란다의 가장 충실한 제자였던 안또니우 페레이라 (António Ferreira)는 지식인들의 스페인어 혼용을 비판하고 포르투갈어의 순수성과 우수성을 강조하며 그 사용을 주장하였으며 평생을 단 한 줄의 시도 스페인어로 쓰지 않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정신은 체계적인 포르투갈어 문법의 정리와 향토적 어휘의 발굴과 사용이라는 중요한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포르투갈 르네상스 문학은 까몽이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는 서정시, 서사시와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걸출한 재능을 발휘하였고 포어권 문학의 대표적인 고전작가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서사시인 ��우스 루지아다스��는 그 구성에서도 이전의 서사시와는 다른 형식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도입함으로서 대상의 맹목적인 영웅화를 탈피하려는 시각을 담고 있다. 또한 사실과 경험에 입각하여 여러 대륙의 이국 문화를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상상에 의존하고 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모습을 유럽 인들에게 선명히 전달하고 있다. 이는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먼저 해양개척에 나설 수 있었던 포르투갈인 들의 민족적 역량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으며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모험심과 불굴의 정신력을 유럽의 모든 민족들에게 과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루이스 드 까몽이스 Luís de Camões


  1) 방황과 고통의 삶

  “단지 까몽이스 그 하나만으로도 완전한 문학의 가치가 있다” 독일의 작가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 (August Wilhelm Schlegel)이 이렇게 정의한 포르투갈어권 최고의 작가 루이스 바스 드 까몽이스는 당시 문학의 모든 장르에 걸쳐 최고의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삶은 많은 논란 속에서도 근거자료의 부족으로 인하여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몇 가지의 사실들은 병무기록부나 사면장, 연금지급서 등의 공식적 문서에 의해 확인되고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주위 사람들의 기억과 작품을 통한 유추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정확성을 기하기 어렵다.

  1524년 (혹은 1525년) 리스본의 몰락한 하급귀족의 집안에서 출생한 까몽이스는 당시 포르투갈 최대의 대학이었던 꼬임브라 대학에서 예술과정을 수학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그의 작품에 언급된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당시 그의 삼촌이 꼬임브라의 싼따 끄루스 (Santa Cruz)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었으며, 이후에 발표된 그의 작품에도 꼬임브라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4) 다혈질적이고 방탕한 생활 속에 젊은 시절 궁정의 귀족들과 교류하였고 동시에 리스본의 보헤미안들과 어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그의 사적 서신에서 귀족들과 거리의 여인들 사이에 관련된 다툼에 휘말렸던 사건을 언급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싸 드 미란다와 연관된 학회의 주변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출신과 지위로 인하여 문학적 재능을 뒤로한 채 군인으로 모로코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오른쪽 눈을 잃게 된다. 이후 리스본으로 후송되어 궁정에서 근무하면서도 한쪽 눈을 잃은 사실은 그를 괴롭히게 된다. 일부의 여인들은 그를 “눈 없는 얼굴” (cara-sem-olhos)로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문학적 재능으로 인하여 높은 신분의 많은 여인들로부터 사랑 받기도 하였고 그 중에는 동 마누엘의 공주였던 도나 마리아 (D. Maria)도 속해 있었다. 그러나 신분의 차이로 인하여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그는 더욱 깊은 시름과 사회 제도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방황의 시간을 보냈던 그는 1550년, 권력의 주변에 있지 못했던 다른 하급 귀족들처럼 인도에서의 근무를 자원하였지만 꿈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2년 후 궁정의 관리를 칼로 찔러 상처를 입히게 됨으로 투옥되었으나 몇 달 후, 1553년 3월, 동 주앙 3세 (D. João III)로부터 사면장을 받게 된다. 자유를 얻은 시인은 삶의 탈출구로 인도 행을 결심한다. 그로부터 약 16년 동안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는 힘겨운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1553년 9월, 약 6개월의 항해를 통해 인도의 고아(Goa)에 도착한 시인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복무하게 된다. 말라바르, 홍해, 말라까 그리고 자바, 보르네오, 티모르 등의 말레이시아의 여러 섬들을 전전하였고 마카오에서도 근무하였다고 전해진다. 중국인 애인과 항해도중 메콩 강의 하구에서 배가 난파되어 ��우스 루지아다스��의 원본만을 가까스로 건진 채 여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일화는 빈번히 인용되고 있다.


“이 강은, 고요하고 부드럽게,

가엽고 불쌍한 난파자의 젖은 노래를

그의 무릎에 받아 주겠지.” (10곡 128연 1-3행)


“Este receberá, plácido e brando,

No seu regaço o Canto que molhado

Vem do naufrágio triste e miserando.” (X, 128, L1-3)


  아시아 지역에서 사망자와 실종자를 파악하는 일을 맡았던 시인은 다양한 이국의 문화와 자연을 접하게 되었으며 힘겹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많은 작품을 집필하였다. 유럽 인들에게 당시 아시아의 문화는 막연한 상상과 신비에 가득한 세계였으나 까몽이스에 의해 보다 선명하고 생생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1567년, 오랜 해외생활과 경제적 어려움에 지친 시인에게 모쌈비끄 (Moçambique)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한 친구가 일자리와 여행경비를 약속하게 되자 귀국을 생각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후 마침내 ��우스 루지아다스��의 원본과 그동안의 작품을 챙겨 모쌈비끄에 도착하지만 약 1년 동안 거의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되고 이때 서정시집 ��포르투갈인의 시문집�� (O Parnaso Lusitano)5)을 도난당하게 된다. 그러나 친구인 디오구 드 꼬우뚜 (Diogo de Couto)를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어 그의 도움으로 리스본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게 되었다.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감격적인 상황을 바스꾸 다 가마의 귀환으로 대변하고 있다.


“언제나 온화하며 화낼 줄 모르는 바람과 함께

고요한 바다를 가르며

그토록 꿈꾸던 고향의 땅이 보일 때까지

항해하였도다.” (10곡 144연 1-4행)


“Assim foram cortando o mar sereno,

Com vento sempre manso e nunca irado,

Até que houveram vista do terreno

Em que nasceram, sempre desejado.” (X, 144, L1-4)


  리스본으로 돌아온 시인은 오랜 항해로 인한 지친 몸을 추스르며 생의 마지막 열정을 ��우스 루지아다스��의 출판에 불사른다.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서도 마침내 1572년, 세상의 빛을 보게된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는 동 세바스띠앙 (D. Sebastião)6)에게 헌사되고 그에 대한 대가로 15,000 헤이스 (réis)의 연금을 지급 받게 되었다. 그러나 생활을 유지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액수였기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사망 시기 또한 정확하지 않아 연금 지급이 중단된 1580년 6월 10일을 사망일로 삼고 있으며 현재 이 날은 ‘포르투갈의 날’ (O Dia de Portugal)로 지정되어있다. 시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검이 오늘날 포르투갈 최대 규모의 제로니무스 성당 (O Mosteiro dos Jerónimos)에 바스꾸 다 가마의 석관과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2) 우스 루지아다스

  고전 문학의 경향 중 하나는 그리스-로마의 대표적인 작가를 모방하려는 성향이었다. 그 작가들 속에 위대한 서사시인인 호메로 (Homero)와 비르질리우 (Virgílio)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16세기의 훌륭한 시인들이 불멸의 서사시를 창작하고자 하였던 원대한 꿈은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되었다. 서사시는 위대한 업적을 필요로 하였고, 포르투갈에서는, 그것이 지역적이건 혹은 인류 전체적인 관심에 있어서건, 가장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 것이 해양 발견사 (Os Descobrimentos)였다. 그리하여 모든 인문주의자들은 이러한 주제를 불멸의 작품으로 남길 시인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안젤로 뽈리치아노 (Ângelo Policiano)는 동 주앙 2세 (D. João II)에게 포르투갈인의 위대한 업적을 라틴어로 노래할 것을 제안하였고, 가르시아 드 흐젠드 (Garcia de Resende)는 ��일반기사집��의 후기에서 포르투갈인의 영웅적 업적을 노래하는 불멸의 작품이 필요함을 역설하였으며, 주앙 드 바후스 (João de Barros)7)는 실제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16세 중엽에는 이미 이러한 서사시의 꿈이 현실화되고 있었으나 단지 천재적인 재능의 작가의 출현만이 과제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과제를 적시에 해결한 작가가 바로 ��우스 루지아다스��의 까몽이스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까몽이스는 포르투갈의 모든 역사를 주제로 선택하였다. ‘우스 루지아다스’는 포르투갈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바꾸 (Baco)8) 신의 아들인 루주 (Luso)가 오랜 전쟁으로 시달린 몸을 쉬기 위해 선택한 땅이 지금의 포르투갈이며 그 후손들이 포르투갈인 임을 의미한다.

  ��우스 루지아다스��는 그 구성에서 크게 두 가지의 모델을 가진다. 1) 구성의 개념적 형식에서 비르질리우의 ��에네이다�� (Eneida)9)를, 2) 8행 10음절 abababcc형의 운율 활용방법에서 아리오스또 (Ariosto)의 ��미친 오를란도�� (O Orlando Furioso)에서 이다. 전 곡은 8행을 한 연으로 하는 총 1102연(聯)의 10곡(曲)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a. 제안 (Proposição) - I, 1-3; 어떤 영웅들보다 뛰어난 포르투갈인들의 업적에 대한 노래를 시작할 것을 밝힘.

   b. 기원 (Invocação) - I, 4-5; 포르투갈 떼주 Tejo강의 수호신인 따지드(Tágides)에게 영광된 업적을 노래할 수 있는 영감을 기원

                       III, 1-2; 깔리오뻬 (Calíope)10)에게

                       VII, 78-87; 떼주강과 몬데구강의 요정들에게

                       X, 8-9; 다시 깔리오뻬에게

   c. 헌사 (Dedicatória) - I, 6-8; 이 작품을 동 세바스띠앙에게 바친다는 내용으로 위대한 포르투갈의 왕들과 인물들의 업적을 상기시키고 있다.

   d. 서술 (Narração) - I, 19;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로 바스꾸 다 가마의 인도 항해 중 발생한 사건들과 포르투갈의 역사, 인물, 신들의 암투, 이국의 문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


  내용상에서도 네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시인을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탄식을 포함한 의견의 표명이며, 두 번 째는 신화적 요소, 세 번째는 바스꾸 다 가마를 통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서술이며, 마지막은 예언적인 부분이다. 전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곡: 까몽이스는 위대한 포르투갈인들의 업적을 노래할 것임을 밝히고 이 시를 동 세바스띠앙 왕에게 헌사한다. 포르투갈의 함대가 아프리카의 동해안을 따라 북상중일 때 올림프스의 신들은 회의를 소집하여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인간의 도전에 대하여 찬반을 논의한다. 비너스(Vénus)가 호의적 자세를 취하고 위기에 처한 함대를 돕고자하는데 반해 바꾸 는 동양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명성을 잃을 수 있다며 적대감을 표현한다. 함대는 모쌈비끄 해안에서 혈전을 벌인 후 몸바싸 (Mombaça)항구에 도착한다.

  2곡: 바꾸는 포르투갈 선단을 파괴시키기 위해 몸바싸 항구에서 우정을 가장한 음모를 꾸미지만 비너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주피터는 비너스의 간청으로 포르투갈인들이 동방에서 이룩할 영광된 업적을 예언한다.

  3곡: 멜린드 (Melinde)에 도착한 바스꾸 다 가마는 현지의 왕에게 먼저 유럽의 역사를 설명한 후 포르투갈 건국에서부터 역대 왕들의 빼어난 치적과 이네스 드 까스뜨루 (Inês de Castro)의 비극적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4곡: 포르투갈 역사에 대한 바스꾸 다 가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동 주앙 2세의 인도항로 개척을 위한 노력과 동 마누엘이 꿈에서 본 간지스와 인더스강을 상징하는 두 노인의 계시로 인도로 출항하게된 경위를 설명한다. 그러나 리스본의 항구를 출발할 때 한 노인이 나타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 헛된 꿈을 비판하며 무리한 항해의 계획을 취소하라는 충고를 한다.

  5곡: 아프리카 서해안을 항해할 당시의 불안한 여정과 현지에서 만난 낮선 부족들, 자연 현상들을 소개하는 한편 벨로주 (Veloso)의 용맹스런 모험담과 희망봉을 지키고 있는 아다마스또르 (Adamastor)의 신화를 소개한다. 분노한 신은 동방원정에서 많은 재앙이 닥칠 것을 예언한다.

  6곡: 바스꾸 다 가마의 이야기를 들은 멜린드의 왕은 포르투갈인들의 모험심과 업적에 감복하며 큰 향연을 베푼다. 또한 인도로 가는 뱃길을 잘 아는 항해사를 소개해 준다. 순조로운 항해를 하던 함대의 일원인 벨로주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영국의 12기사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바꾸는 바다의 신 넵튠 (Neptuno)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풍랑을 일으킨다. 침몰의 위기에서 비너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난 함대는 인도의 깔레꾸뜨 (Calecut)에 도착하게 된다.

  7곡: 인도의 서해안에 위치한 까레꾸뜨에 도착한 함대는 닻을 내리고 현지 왕인 싸모링 (Samorim)에게 사신을 파견하지만 현지 통역사인 몽싸이드 (Monçaide)로부터 왕이 부재중임을 통고 받는다. 함대를 방문한 몽싸이드가 인도의 지리, 역사, 종교 등의 관습을 설명한다.  싸모링을 만난 바스꾸 다 가마는 양국 간의 외교수립과 교역을 제안한다. 한편 왕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재상 까뚜알이 함대를 방문하여 높은 수준의 새로운 문명에 놀란다.

  8곡: 바스꾸 다 가마의 형제인 빠울루 (Paulo da Gama)가 함대에 걸린 많은 그림과 싯귀를 통해 포르투갈인들의 영웅들을 다시 한번 까뚜알에게 설명한다. 그러나 현지의 점술가들은 포르투갈인들의 도착이 불길한 징조라고 하자 이를 전해들은 이슬람교도들은 까뚜알을 매수하여 가마를 육지에 억류시킨다. 그러나 물욕에 어두운 이들에게 많은 돈을 제시하자 일행을 석방한다.

  9곡: 어려운 상황으로 교역을 성공적으로 마치진 못하였지만 동양에 대한 상징적 물건과 항로개척의 성공이라는 희소식을 간직하고 귀국 길에 오른다. 비너스는 포르투갈인의 불멸을 업적을 기리고 모험적인 항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들을 위해 ‘사랑의 섬’ (Ilha de Amor)을 만들고 많은 요정들로 하여금 오랜 항해의 지친 몸을 쉬도록 한다. 이는 역경을 극복한 노력에 대한 신의 보상임을 시인은 피력한다.

 10곡: 포르투갈의 용사들이 요정들과의 연회를 통해 원기를 회복한다. 잔치가 끝나고 요정 떼띠스 (Tétis)는 가마를 성스러운 산으로 인도하여 우주의 원리와 천체의 구성에 대해 설명한다. 섬을 떠난 함대는 그리던 조국으로 귀환하며 많은 인파의 환대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까몽이스는 충성스런 신하들에게 합당한 대우가 필요하며 왕의 선정과 영광을 예언의 형식으로 간구한다.


   ��우스 루지아다스��가 다른 서사시와 구별되는 특징들 중 하나는 바스꾸 다 가마의 항해를 주된 줄거리로 다루고 있지만 그 개인의 영웅적 모험담을 칭송하는 것이 아닌, 영광된 업적을 이뤄낸 포르투갈 인이라는 집단적인 주체를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의 첫 구절에서 언급된다.


드높은 명성의 용사들이

루지따니아의 서해안으로부터,

누구도 항해한 적 없었던 바다를 통해

따쁘로바나 너머까지 진격하여

인간의 한계를 넘는

위험과 전투를 극복하며

먼 이방의 세계에서

저토록 고귀한 새 왕국을 세웠도다. (1곡 1연)


“As armas e barões assinalados

que, da Ocidental praia Lusitana,

Por mares nunca dantes navegados

Passaram ainda além da Taprobana,11)

Em perigos e guerras esforçados

Mais que prometia a força humana,

E entre gente remota edificaram

Novo Reino, que tanto sublimaram; (I, 1)


신앙과 제국을 확충하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부정한 땅을 휩쓸었던

위대한 왕들과

그 영광스런 업적들이

만일 망각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나의 재능과 솜씨가 돕는다면

노래불러 온누리에 펼치리라. (1곡 2연)


E também as memórias gloriosas

Daquele Reis que foram dilatando

A Fé, o Império, e as terras viciosas

De África e de Ásia andaram devastando,

E aqueles que por obras valerosas

Se vão da lei da Morte12) libertando:

Cantando espalharei por toda a parte,

Se a tanto me ajudar o engenho e arte." ( I, 2)


  또 위의 전체 내용에서 살펴보았듯이 구성방식에서도 사건의 발생을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에 맞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1곡의 내용은 이미 포르투갈의 함대가 아프리카의 동해안 즉, 모쌈비끄 해안에서 전개되는 위기의 상황 속에 전개되고 있다. 리스본을 출발하는 장면과 아프리카의 서해안을 지나 희망봉을 돌아 나오는 장면은 회상을 통해 묘사되고 있다. 이는 르네상스시대의 서사시가 갖는 새로운 형식이며 까몽이스의 계획에 의한 단순하고 일반적인 구성방식에서의 일대 전환이라 볼 수 있다. 이와 연관되어 인문주의자로서의 시인의 대표적 일면은 ‘헤스뗄루의 노인’ (Velho do Restelo)의 일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의 전파와 제국의 영광이라는 이름 하에 많은 젊은이의 목숨을 담보로 출항하는 함대의 모습을 바라보던 한 노인이 등장하여 근엄한 목소리로 충고한다. 허황된 명성과 부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을 일삼고 가장 소중한 삶 혹은, 생명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당시의 가치관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오, 헛된 야망이여, 지배욕이여,

명성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오, 부질없는 희열이여,

영예라 불리는 인기에 자극받는!

그대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이런 허황된 가슴에다

얼마나 무서운 죽음과 위험과 고통을 안겨주며

지독한 잔인성을 시험하려 하는고!" (4곡 95연)


“Ó glória de mandar, ó vã cobiça

Desta vaidade, a quem chamamos Fama!

Ó fraudulento gosto, que te atiça

Cũa aura popular, que honra se chama!

Que castigo tamanho e que justiça

Fazes no peito vão que muito te ama!

Que mortes, que perigos, que tormentas,

Que crueldades neles esprimentadas!" (IV. 95)


  신들의 등장은 포르투갈 함대의 인도항로의 개척을 정당화하려는 시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그들의 항해가 신들의 도움을 이끌어내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화된 신들의 모습은 음모와 암투로 이어지며 작품의 극적 효과를 배가하고 있고 당시의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탈피하는 이교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동방으로 계획된 바스꾸 다 가마의 항해를 두고 열린 신들의 회의에서 비너스는 호의적 태도를 보였다.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그에 맞서 예쁜 비너스가

루지따니아인들을 편들어 항변하니,

이들에게서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하던

옛 로마인의 장점을 엿볼 수 있으며,

띤지따니아에서 보여주었던

강한 용맹과 천우신조의 기운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아도

라틴어를 잘 보존하고 있음이라." (1곡 33연)


“Sustentava contra ele Vénus bela,

Afeiçoada à gente lusitana,

Por quantas qualidades via nela

Da antiga, tão amada sua, Romana;

Nos fortes corações, na grande estrela,

Que mostraram na terra Tingitana,13)

E na língua, na qual, quando imagina,

Com pouca corrupção crê que é a Latina." (I, 33)


  그러나 바꾸는 이들의 항해를 적극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루지따니아의 백성이 동방에 이르게 되면

이룩해놓은 그의 공적이 잊혀질 것이므로." (1곡 30연 7-8행)


“Que esquecerão seus feitos no Oriente,

Se lá passar a Lusitana gente" (I, 30, L7-8)


“이제 항해중인 강력한 포르투갈인들이

그 곳에 도착하는 날이면

그토록 빛나던 그의 명성이 망각의 검은 잔 속으로

잠겨 버릴 것을 두려워함이라" (1곡 32연 5-8행)


“Teme agora que seja sepultado

Seu tão célebre nome em negro vaso

De água do esquecimento, se lá chegam

Os fortes Portugueses que navagam." (I, 32, L5-8)


  ��우스 루지아다스��에서 시인의 상상력이 가장 잘 드러나 보이는 대목은 ‘사랑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도 항해한 적 없는 거친 바다를 풍랑, 괴질병 등과 싸우며 오직 신앙과 충성심으로 모든 역경을 극복한 포르투갈의 용사들에게 비너스는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향연을 준비한다. 이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임무를 수행한 이들에 대한 보상이며 고진감래의 상징적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토록 고통받은 상처와

힘들게 성취한 영광을 보상하기 위해

이 암울한 바다에서나마

기쁨을 제공하기로 하였구나." (9곡 18연 5-8행)


“A glória por trabalhos alcançada,

Satisfação de bem sofridos danos,

Lhe andava já ordenando, e pretendia

Dar-lhe, nos mares tristes, alegria." (IX, 18, L5-8)


  3) 르네상스와 까몽이스

  까몽이스는 르네상스시대의 시인이었다. 그는 시대를 받아들였고 그 시대에 대한 인식은 작품 ��우스 루지아다스�� 속에서도 반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경험에 대한 인식이었다. 16세기 이전까지, 경험이란 지식의 중요한 원천임을 인식하는 예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중요한 지식들은 스승에서 제자들에게 전달되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시대에서 이러한 형태는 점차 변화되었고 경험적 사실들과 과학적 근거들이 이론을 정립하는 주된 요소가 되었다. 그가 오랜 기간동안 경험하고 직접 눈으로 확인한14) 사실들에 근거한 작품의 전개는 보다 생생한 모습을 유럽 세계에 전달해 주었고 마르꼬 폴로 이후 환상과 신비 속의 동양의 모습은 선명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두 번째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작품에 언급된 내용으로, 이국에서 접하게된 신기한 동식물의 모습과 자연의 묘사, 희귀한 자연현상(남대서양을 지나며 목격한 물오름 현상, 불기둥, 태풍 등)과 심지어 질병(괴질, escorbuto)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경험하며 경이에 찬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 또한 지리, 인종, 문화 등에 대하여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그가 걸었던 발자국마다 상세히 열거하고 있다. 세 번째는 우주의 중심에 존재하는 인간세계의 가치를 부여하고 운명 개척의 절대적 주체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인문주의자로서의 자긍심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며, 네 번째는 시인이 살고 있던 시대의 사회악(惡)적 요소에 대한 신랄한 비판정신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을 추종하는 무리와 고통을 세습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이상세계와 멀리 있는 현실임을 꼬집고 있다.15) 마지막으로 권력자들의 예술적 무지와 예술가들에 대한 경시의 풍토를 고통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4. 결론


  음유시의 전통적 형식을 이어온 포르투갈의 문학은 르네상스의 도입과 함께 고전 문학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인도항로의 개척으로 가장 먼저 이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받아들였던 포르투갈은 진정한 르네상스의 이념을 실천하는 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일찍부터 선진의 문화를 배우고 수용했던 포르투갈은 유럽 최초의 독립된 중앙집권적 국가를 형성하였으며 이는 보다 빠른 해양 개척사를 쓰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유럽 전역은 동양의 문화와 실상을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고 동방정책의 지침이 되었다. 문학적 관점에서도 페르낭 멘드스 삔뚜 (Fernão Mendes Pinto)의 편력기 (Peregrinação)가 출판되어 여행문학이 발전하였고 아시아의 역사서가 줄지어 쓰여지게 되었다. 이는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의 개척이었으며 유럽의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이정표를 던져주게 되었던 것이다.

  루이스 바스 드 까몽이스를 단지 위대한 서사시인 ��우스 루지아다스��의 작가로 한정지을 수는 없다. 해박한 지식과 천재적 재능으로 포르투갈어권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하여 포르투갈의 르네상스 문학은 완성되었고 그 자신 하나만으로도 완전한 문학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스 루지아다스��는 제국의 지리적 확장과 지식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을 노래하고 있다. 까몽이스는 바스꾸 다 가마와 포르투갈 인들의 항해를 통해 그가 꿈꾸던 완전한 세상을 구현하고 우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실현코자 하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주요어: 우스 루지아다스, 루이스 드 까몽이스 , 싸 드 미란다, 포르투갈 르네상스, 바스꾸 다 가마, 해양발견사.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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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 Lusíadas, Edição organizada por Emanuel Paulo Ramos, Porto Editora, 1979, Po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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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ónio José Barreiros, História da Literatura Portuguesa, Vol. I - séc. XII-XVIII, Bezzera-Editora, 1996, Br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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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nâni Cidade, Lições de Cultura e Literatura Portuguesas Vol. I, Coimbra Editora, 1984, Coimbra.

João Mendes, Literatura Portuguesa I, 3a. edição, Editorial Verbo, 1987, Lisboa.

Jorge de Sena, Estudos sobre O Vocabulário de Os Lusíadas, Edições 70, 1982, Lisboa.

José Filgueira Valverde, Camões, 1982, Livraria Almedina, Coimbra.







ABSTRACT


Portuguese Renaissance and Camões


Pil-Hwan Song


    Portugal was the first European country that set out the age of great voyage and the pioneering literature of voyages. Vasco da Gama's discovery of the route to India initiated economic revolution in Europe, caused the center of the European trade to be moved from the Mediterranean to the Atlantic and the Indian Oceans, and thereby accelerated the decline of Italy. However, from the viewpoint of culture, Portugal still depended on Italy and France, and the waves of the Renaissance flooded from Italy into Portugal.

    Francisco de Sá de Miranda was the first to introduce into Portugal the new literary style "estilo italiano" like sonnets, ten syllable verse, and classical comedies and tragedies, which he got acquainted with during his trip to Italy.

    Luís de Camões was the major writer of the Portuguese Renaissance literature. His epic Os Lusíadas is a manifestation of Camões's nationalistic spirit. It deals with the various incidents that happen in Vasco da Gama's voyage to India. It is an epic about a hero who struggles to overcome the limit of human knowledge in the course of the expansion of the empire. Da Gama is the incarnation of such heroic spirit and a representative Renaissance man who esteems experiments and scientific way of analysis. Through this hero, Camões tries to depict the perfect world that he wants to discover and to comprehend the principles of the cosmos.




Key words: Os Lusiadas, Luis de Camões, Sa de Miranda, Portuguese Renaissance, Vasco da Gama, Os Descobrimentos.


* 이 논문은 2003학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원연구비의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

* 이 논문은 2003학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원연구비의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

1) 1516년 Garcia de Resende에 의해 편집, 출판됨. 포르투갈 궁정시를 모아 정리한 것으로 당시 궁정의 생활 습관과 규범들을 추측 할 수 있는 포르투갈 최초의 시가집. 수록된 많은 서정시들에 나타난 여인과 사랑에 대한 관점은 이미 이탈리아의 고전작가들, 특히 페트라르카의 영향이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다.


2) Bembo, Sannazzaro, Sadoletto, Ariosto, Vitória Colonna.


3) Bóscan, Garcilaso


4) 그의 시 “몬데구의 부드럽고 맑은 물” (「doces e claras águas do Mondego」), “꽃핀 대지” (florida terra)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5) História da Literatura Portuguesa, António José Barreiros, Vol. I, 15 (a edição, Bezerra-Edirota, 1996) 에는 동일 작품이 Parnaso de Luís de Camões로 명기됨.


6) D. Sebastião (1554-1578), 포르투갈의 16대 왕. D. João의 아들. 북아프리카 정벌에 나섰으나 Alcácer Quibir 전투에서 사라짐. 포르투갈은 왕위 계승문제에 휘말려 2년 후 스페인에 합병됨. 후에 그가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와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리라는 믿음이 세바스티아니즘 (Sebastianismo)으로 발전된다.


7) João de Barros(1496-1590) 아시아 ��십 권사�� (Décadas de Ásia)의 저자. 16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역사가. ��포르투갈 문법�� (Gramática da Língua Portuguesa)을 저술하기도 함.


8) 일반적으로 바커스로 알려진 그리스신화의 디오니쏘스. 우스 루지아다스에서는 포르투갈어 바꾸 (Baco)이므로 원문의 발음에 충실한다.


9) 로마 건국의 서사시 ‘이네이다 (Eneida)’는 라틴어 원문으로 ‘에네이데 (Aeneide)’, 현 이탈리아 표기상의 ‘에네이데 (Eneide)'로 본 논문에서는 포르투갈어의 발음 방식을 따랐으며 작가 비르질리우 (Virgílio) 또한 이탈리아어의 비르질리오 (Virgilio)의 포르투갈식 발음이다. 이후 고유명사의 발음은 일반화된 것을 제외하고 모두 포르투갈식 발음에 기초한다


10) 영웅시의 여신, 오르페우(Orfeu)의 어머니


11) 실론 (Ceilão)섬, 스리랑카의 옛 이름.


12) 죽음의 법률 (Lei da Morte)은 망각을 상징함.


13) 띤지스 (Tingis)는 오늘날 모로코의 딴헤르 (Tanger)를 지칭함. 쎄우따 (Ceuta)와 함께 포르투갈에 정복당했던 북아프리카의 전략적 요충지.


14) 까몽이스는 우스 루지아다스에서 그가 눈으로 확인한 자연의 현상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나는 보았다, 선명하게 보았다.” (Vi, claramente visto.) (V, 18, L1), “나는 그것을 틀림없이 보았다. / 눈이 나를 현혹했다고 여기진 않는다.” (Eu o vi certamente e não presumo / Que a vista me enganava.) (V, 19, L1-2)


15) 9곡 28연, “가난한 자들에게 하늘의 사랑을,/ 백성들에게 박애를 쏟아야 할 저들이/ 정의와 공정을 가장하여/ 오로지 권세와 부귀에만 집착하는구나./ 추한 폭정과 가혹함을 이용하여/ 허황된 법과 엄격을 고안하는구나./ 왕을 위한 법률만을 만들고 있으니/ 백성들을 위한 것들은 자연히 소멸되고 마는 것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