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느가 젊은 화가들에게 "영향력 있는 거장들을 경계하라."라고 경고하곤 했었던 것은 미술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다. 과연 세잔느보다 영향력 있는 거장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헨리 마티스는 한때 세잔느를 마티스 자신과 파블로 피카소, 조지 브라크, 몬드리안 그리고 모더니즘의 모든 선구자들을 대표하는 "우리 모두의 거장"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페르낭 레제는 언젠가 기자에게 마치 그가 세잔느에 중독되기라도 한 것처럼 "세잔느를 끊기 위한 전쟁"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화창했던 어느 날," 레제가 말했다. "난 이렇게 소리쳤죠, '젠장!' "

 

세잔느가 했던 것 중에서 미래에 대해서 그토록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그 것들 중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그가 화면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명백하게 분리되고 눈에 띄는 일련의 붓질들로 각각의 그림을 구성함으로써 풍경위에 놓인 창으로서 캔버스를 다루려는 관찰자의 자연스러운 충동을 혼동하였다. 그는 당신의 시선을 평평한 그것이 평평한 표면위의 펼쳐진 점들이라는 사실이라고 강요한다. 그는 당신의 주목을 그것이 평평한 표면위의 한 범위의 인상들이라는 사실을 믿게끔 강요한다. 성숙한 세잔의 작품에서 모든 붓 터치는 이중적인 형태를 띠었다. 화가의 환상으로서 그리고 캔버스 위의 물감의 얼룩진 그 자체의 모습으로. 이것은 큐비즘에서부터 추상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엘스워스 켈리, 제스퍼 존스 그리고 브라이스 마든 같은 작가들의 작품 안에서 한 세기를 지나도 울려 퍼지는 발견이었다. 세잔은 인상파 화가들의 직접성을 받아들였다-그들 작품의 순간적인 인상-그리고 그것을 작품을 만드는 야심과 결합시켜 보다 안정되고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에 의해서 그려진 대부분의 사람 형태는 이집트 무덤 조각의 양감과 질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아치구성 안에서 비스듬하게 서로를 받치고 있는 구도인 그의 후기 작품 목욕하는 여인들은 왜 마치 쇼핑몰의 에스컬레이터와 같이 마치 뻣뻣한 사물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하는 것을 도와준다.)

 

하지만 세잔의 분리된 수많은 붓질은 불안정한 형태로 나타낼 때에, 그것을 희미하고 보이지 않는 힘으로 분해하는 역설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가 1877년에 그린 아내 호텐스의 초상화를 봐라. 세잔은 넓게 펼쳐져 흐르는 붓질로 인해 그녀의 안정성의 기념을 보여줬다. 그로부터 50년 후, 피카소는 그의 어린 애인인 마리 테레사를 그린 “꿈”이라는 수채화속에 그녀는 마담 세잔과 같은 장식인 손을 무릎위에 얹은 자세를 이용했다. 마리 테레사의 보랏빛 살결과 부드러운 윤곽으로 그녀를 더 부드러운 형태로 표현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세잔에게 배웠다.

 

브라크는 사과와 식탁보와 같은 정물을 보았고, 그것을 뒤틀린 형식과 기울어진 면의 아이디어로 사용해 피카소와 더불어 난해한 큐비즘을 이끌었다. <몬태나 센테 빅토리>를 보는 세잔의 다양하고 영향력 있는 관점은 미국의 화가 마스든의 박력 있는 해양의 풍경화를 이끈다. 마치 옛 프랑스인들이 자연의 형태에서 이끌어냈던 것처럼 세잔느의 끈질긴 연구는 물의 시각적인 경험에서 뽑아내고 추상해낸 2002년 색으로 가득한 화판 즉 엘스워스 캘리의 <강2>라는 작품에서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