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cheong-ga: The Eye Opening Scene
(아니리)
심봉사와 안씨맹인과 주점에서 쉬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 궁궐을 찾어 들어갈 제, 그 때여 황후께서는 날마다 오는 소경
거주 성명을 받아보되, 부친 성명은 없는지라,
(진양조)
심황후 기가맥혀 혼잣말로 탄식헌다. "이 잔치를 배설키는 부친을 위험인디, 어이허여 못 오신그나? 내가 정녕 죽은 줄을
알으시고 애통허시다 굿기셨나? 부처님의 영험으로 완연히 눈을 떠서 소경 축에가 빠지신가? 당년 칠십 노환으로 병환이
들어서 못 오신가? 오시다 노중에서 무슨 낭패를 당허신가? 잔치 오날이 망종인디, 어이 이리 못 오신그나." 혼자
자진복통으로 울음을 운다.
(아니리)
이렇듯 애통하실 적으, 이날도 대궐문을 활짝 열어제쳐 놓고 각 영문 군졸들은 봉사들을 인도허고, 내관은 지필 들고 오는
소경 거주 성명이며, 연세 직업 자녀유무와 가세빈부 유무식을 일일이 기록허여 황후전에 올렸것다. 황후 낱낱이 받아보실
적으,
(자진모리)
각기 직업이 다르구나. 경을 읽어 사는 봉사, 신수 재수 혼인궁합 사주 해몽 실물 심인 점을 쳐 사는 봉사, 계집으게
얻어먹고 내주장으로 사는 봉사. 무남독녀 외딸에게 의지허고 사는 봉사, 아들이 효성 있어 혼정신정 편한 봉사, 집집이
개 짖키고 걸식으로 사는 봉사, 목만 쉬지 않는다면 대목장에는 수가 난다 풍각쟁이로 사는 봉사. 아들이 앉은 뱅이라
지가 벌어다 멕이는 봉사. 그 중에 어떤 봉사 도화동 심학균디, 연세는 육십오세, 직업은 밥만 먹고 다만 잠자는
것뿐이요, 아들은 못 나보고 딸만 하나 낳었다가 제수로 팔어먹고, 출천대효 딸자식이 마지막 떠날 적에 앞 못 보신 늙은
부친 말년 신세 의탁허라고 주고 간 전곡으로 가세는 유여터니, 뺑덕이네란 계집년이 모두 다 털어먹고, 유무식 기록에는
이십 안맹허였기로 사서삼경 다 읽었다 뚜렷이 기록이 되었구나.
(아니리)
심황후 낱낱이 읽어가실 적으로 오죽이나 반가웠으며, 그 얼마나 기뻤으리오마는, 그러나 흔적 아니허시고 내관 불러
분부허시되, 맹인 성책 내어주시며, "이 중에 심맹인이 계시거든 이 별궁으로 모시어라." 내관이 영을 듣고 나가,
"심맹인! 심학규씨 있으면 이리 나오시오! 심맹인!" 심봉사 듣더니, "심맹인이고 무엇이고 배 고파 죽겄구만! 술이나
있으먼 한 잔 주제." "아, 술도 주고, 밥도 주고, 떡도 주고, 집도 주고, 돈도 주고 헐 터이니 이리 나오시오."
"거 실없이 여러 가지 것 준다. 근디 어찌서 꼭 해필 날만 찾으시오?" "상을 줄지, 벌을 줄지 모르지마는, 우에서
심맹인을 모셔오라 허셨으니, 어서 들어가십시다." 심봉사 듣더니, "상을 줄지, 벌을 줄지? 놈 용케 죽을 데 잘
찾어왔다. 내가 딸 팔어먹은 죄가 있는디, 이 잔치를 배설키는 날 잡어 죽일라고 배설헌 것이로구나. 에라! 내가 더
살어 무엇허리! 갑시다." 주렴 밖에 당도허여,"심맹인 대령이오!" 황후 자서히 살펴보시니, 백수풍신 늙은 형용 슬픈
근심 가득찬 게 분명한 부친이라. 황후께서 체중허시고, 아무리 진중허신들 부녀천륜을 어찌허리!
(자진모리)
심황후 거동 보아라. 산호 주렴을 걷혀버리고 우루루루루루루루루루. 우루루루 달려나와,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버지!" 한 번을 부르더니 다시는 말 못허는구나. 심봉사 부지불각 이 말을 들어노니, 황후인지, 궁녀인지, 굿 보는
사람인지 누군 줄 모른지라. 먼 눈을 희번쩍 희번쩍 번쩍거리며, "에이? 아버지라니? 아니, 누가 날다려 아버지래여?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수삼년 되었는디, 누가 날다려
아버지래여?" 황후 옥루 만면하여,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인당수 빠져 죽은 불효여식 청이가 살어서
여기 왔소." 심봉사 이 말 듣고, "에이? 이게 웬 소리? 이것이 웬 말이여? 심청이라니? 죽어서 혼이 왔느냐? 내가
죽어 수궁을 들어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이것이 웬 말이여? 죽고 없는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어오다니 웬 말이냐? 내 딸이먼 어디 보자. 아이고 이놈의 눈이 있어야 보제. 아이고 답답허여라. 이런 놈의 팔자 좀
보소. 죽었든 딸자식이 살어서 왔다 해도 눈 없어 내 못 보니. 이런 놈의 팔자가 어디가 또 있느냐?" 이 때의 용궁
시녀 용왕의 분부인지, 심봉사 어둔 눈에다 무슨 약을 뿌렸구나. 뜻밖에 청학 백학이 황극전에 왕래허며 오색채운
두르더니, 심봉사 눈을 뜨는디, "아이고, 요 어찌 눈갓이 이렇게 근질 근질 근질 근질허고 섬섬섬섬허냐? 웟다, 이놈의
눈 좀 떠서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이놈의 눈 좀 떠서 내 딸 좀 보자아!"
(아니리)
"아니, 여기가 어디여?' 심봉사 눈 뜨는 바람에 천하에 있는 맹인과 각처 맹인들이 모도 눈을 뜨는디, 심봉사는 약이나
뿌려 눈을 떴지마는, 다른 봉사는 어떻게 눈을 떴는고 허니, 이 약은 용궁 조화가 붙은 약이라, 약 기운이 별전에서 쫙
퍼지더니, 방방곡곡으로 꼭 맹인 있는 곳만 찾아다니면서 모다 눈을 띄이는디,
(자진모리)
만좌 맹인이 눈을 뜬다. 만좌 맹인이 눈을 뜰 제, 전라도 순창 담양 세갈모 띄는 소리라. 짝 짝 짝짝허더니마는 일시에
모다 눈을 뜨는디, 석달열흘 큰 잔치에 먼저 와서 참례허고 내려간 맹인들은 저희 집에서 눈을 뜨고, 병들어 사경되야
부득이 못온 맹인들도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헌 맹인도 노중에 눈을 뜨고, 천하 맹인이 일시에 눈을 뜨는디,
(휘모리)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서서 뜨고, 앉어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홰내다가 뜨고, 성내다가 뜨고, 울다
뜨고, 웃다 뜨고, 힘써 뜨고, 애써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시원히 뜨고, 일허다가 뜨고, 앉어 놀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졸다 번뜻 뜨고, 눈을 끔적거려보다가도 뜨고, 눈을 부벼보다가도 뜨고, 지어비금주수라도 눈먼 짐승은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 천지가 되었는디, 그 뒤부터는 심청가이 대문 허는 소리만 들어보아도 명씨 배겨 백태 끼고, 다래끼 석
서는 디, 핏대 서고, 눈꼽 낀 데, 원시 근시 궃인 눈도 모도 다 시원허게 낫는다고 허드라.
(아니리)
심생원도 그제야 정신차려 좌우를 살펴보니, 칠모 금관 황홀허신 어떠한 부인 한 분이 옆에 와 앉았거는, 썩 돌아앉어
내외헌다고 허는 말이, "이것 내가 암만해도 이거 꿈을 꾸는 것 아닌가, 여?" 황후 부친을 붙들고, "아버님, 제가
죽었든 청이옵니다. 살어서 황송허옵게도 황후가 되었사옵니다." 심생원 깜짝 놀래, "에이? 아이고, 황후마마.
군신지의가 지중하온데 황송무지하옵니다. 어서 저 전상으로 납시옵소서." 심생원이 황후의 전후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더니마는,
(중모리)
"옳제, 인제 알았구나. 내가 인제야 알겄구나. 내가 눈이 어두워서 내 딸을 보던 못했으나, 인제 보니 알겄구나. 갑자
사월 초파일밤 꿈 속의 보든 얼굴 분명한 내 딸이네. 죽은 딸을 다시 보니 인도환생을 허였느냐? 내가 죽어 수궁을
들어왔느냐? 이것이 꿈이냐? 이거 생신가? 꿈과 생시 분별을 못허겄네. 얼씨구나 좋을씨고, 절씨고나 좋을씨고. 아까까지
내가 맹인이라 지팽이를 짚고 다녔으나, 이제부터 새 세상이 되니 지팽이도 작별허자. 너도 나 만나갖고 고생 많이 했다.
이제는 너 갈 데로 잘 가거라." 피르르르르르르 내던지고, "얼씨구나 좋을씨고."
(중중모리)
"얼씨구나 절씨고, 절씨구나 절씨고. 어둡던 눈을 뜨고 보니 황성 궁궐이 장엄허고, 궁 안을 살펴보니, 창해 만리 먼먼
길 인당수 죽은 몸이 한 세상에 황후 되기 천천만만 뜻밖이라. 얼씨구나 절씨고. 어둠침침 빈 방안으 불 켠 듯이
반갑고, 산양수 큰 싸움에 자룡 본 듯이 반갑네. 흥진비래 고진감래 날로 두고 이름이요, 부중생남중생녀 날로 두고
이름이로구나. 얼씨구나 절씨고. 여러 봉사들도 눈을 뜨고, 춤을 추며 송덕이라. 얼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고. 이 덕이 뉘 덕이냐? 황후 폐하의 성덕이라. 일월이 밝어 중화허니, 요순 천지가 되었네. 태고적
시절이래도 봉사 눈 떴단 말 처음 들었네. 얼씨구나 절씨고. 덕겸삼황에 공과오제 황제 폐하도 만만세. 태임 태사 같은
여중요순 황후 폐하도 만만세. 천천만만세 성수무강 허옵소서. 얼씨구나 절씨구. 심생원은 천신이 도와서 어둔 눈을 다시
뜬 연후의, 죽었든 따님을 만나보신 것도 고금에 처음 난 일이요, 우리 맹인들도 잔치에 왔다가 결좌맹인이 눈을 떴으니,
춤출 무 자가 장관이로다. 얼씨구나 절씨고. 얼씨고 절씨고 지화자 좋네. 이런 경사가 또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