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茶禮

 

차례란 차를 마실 때의 예의범절, 즉 차에서 행사하는 예()를 말한다. 아늑한 차실에서 지기(知己)와 더불어 차를 즐길 때나, 혹은 일반 가정에서 방문한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 아니면 시중의 다방에서 차를 마실 때에는 반드시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예의가 필요한 것인데, 이러한 때에 행해져야 할 모든 범절을 차례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차례를 행하는 미풍(美 風)의 한 예속(體 俗)이 옛적부터 전해오고 있는데 제례(祭禮) 때나 혼사(婚事) 때에 행해지는 차례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우리 나라에 전래해 오는 예속으로서의 차례에 대해서 말하고, 그것이 우리 현대생횔에 갖는 함축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제례룰 특히 차례라는 말로 불러오고 있다. 바로 이것은 기제사(忌祭祀)나 명절 제시를 막론하고 제례에는 반드시 다식(茶食)을 제수(祭需)로 올리고, 향을 사르고, 차로서 제례를 행하였던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물론 술이 제수로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술보다도 차를 더 중히 여겼던 것이다. 이 점 성현(成俔)의『용재총회(慵齋叢話)』에 “제사에는 여러 가지 과일과 인절미와 차와 탕과 술을 쓴다(祭奠諸果餠茶湯與酒)’’ 고 한 기록이나, 현재까지도 차가 나생(羅 生)하고 있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일부지방 범절 있는 집안에서는 반드시 차로서 제사를 모시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도 틀림없는 일이다.

요즘은 이것이 잘못되어 제시를 모실 때 초헌(初 獻), 아헌(亞 獻), 종헌(終 獻) 이라고 해서 세 차례 술을 올리는가 하면, 국그릇을 내려 놓고 숭늄을 올리는 제사 절차를 헌차(獻茶)라고 하여 차가 술이나 맹물로 바뀌어 버린 셈이다.

또 옛적엔 제수로서 반드시 다식(茶 食)이 있어야 했으니, 거의 집집마다 다식판 (茶食板)을 마련해 놓고 송화다식(松花茶食 松花 가루를 꿀에 반죽하여 다식 판에 박아 낸다),혹 임자다식을 만들어 제상에 올리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 다식에 대해서 조선왕조 때 실학자 성호(星 湖) 이익(李 漢), “내 생각으로 다식은 아마 송()나라 때의 대소용단(大小龍團)이 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차는 원래 끓는 물에 달이는 것인데 가례(家禮)에는 점차(點茶)를 썼다. 즉 찻가루를 먼저 잔속에 넣고 더운 물을 붓고 휘저었던 것이다. 지금 제사 때 다식을 쓰는 것은 실은 점차에서 온 것이지만, 물건이 바뀌고 만 셈이다. 일반이 밤가루를 내 물고기나 새나 꽃이나 나뭇잎  모양을 만들어 쓰는 것은 곧 용단이 변한 것인 줄로 안다”고 말하고 있다.

가례(家禮)에 점차를 썼다는 것은 바로 말차(採茶 . 차잎을 찧어서 가루로 만드는 것)를 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신라나 고려 때에 크게 유행하였던 점으로 미루어보아서도 틀림없는 말이다.

특히 설 추석 등 대명절에는 평상시와는 달리 목욕재계(休浴齋戒)하고, 정성껏 마련한 갖가지 제수를 제상에 괴어 놓고 차례를 모신다.

끝난 다음에는 집안의 어른들과 자녀 . 가족들이 단란하고 화목하게 식사를 한 다. 이 때 우리는 예의를 갖추어 식사를 하게 되어 있고,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식사의 예절 등을 일러주기도 하는 것인데, 옛적부터 차로서 그 범절을 가르치던 유풍(遺風)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예속은 하루 빨리 되찾아야 할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진주(晉州)지방의 몇 가정에서는 다시금 차로서 제례를 행하고 있는데, 이 점 지극히 다행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혼사 때의 차례는 더욱 의미 심중한 뜻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들 조상의 차례라는 것은 매우 재미있게 착안된 차생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혼사 때의 차례가 이미 깊게 착안된 차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식을 전후하여 차례를 행함으로써 차도(茶道)의 깊은 뜻을 현실생활 속에 살려가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래의 결혼식에는 반드시 결혼 전후를 통하여 두 번의 차례를 행한다. 처음에 남혼여취(男婚女要)의 납폐(納幣)를 행할 무렵에 그들 부형 (父兄)들은 차로서 예를 행하고, 또한 혼약(婚約)이 결정되면 ‘봉차(封茶)’라고 하여 차를 봉해 보냄으로써 굳은 언약을 표한다.

다음에는 결혼식이 끝난 뒤에 신부가 시가(媤 家)로 가서 처음 그 시가댁의 선영을 모신 사당(祠堂)을 배알할 때에도 차례를 행하게 되어 있다. 이 때에 신부는 그 친가에서 마련하여 온 다식(茶食),다과(茶果) 등의 음석을 정중히 그 제상에 올려놓은 뒤에 헌차 예식을 행한다.

이렇게 신부가 시댁에 처음 참예(參 諸)할 때 차례를 행하는 내용인 즉은 시부모를 잘 받들어 섬기며, 선대의 봉제사(奉祭祀)는 물론 자녀를 낳아 그 시집 가문을 계계승승(繼繼承承)케 하고, 인생행로에서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 쓰디쓴 일, 짬짤한 일 등의 그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잘 인내하고 감수해 나가겠다는 것을 새롭게 다짐하고 결심하는 행사인 것이다.

또한 차나무는 옮겨 심어지면 잘 살지 못하듯이, 정 절을 지키고 사시사철 싱싱히 푸른 차나무와 같이 시집살이를 잘하겠다는 의의가 내포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이 차례로써 이루어져 온 사실을 생각할 때 한 가정의 행 . 불행을 좌우하는 주부의 책임은 더욱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중대한 책임을 완수히는 노력은 자연히 차생활이 그 위주가 될 수밖에 없다. 행복한 가정 건실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는 주부의 차생활이야 말로 중대한 일이라아니 할 수 없다.

이상으로 우리나라 전래의 풍속인 차례를 말했지만 차례의 범절은 학생, 사회인, 주부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고, 또한 일상생활의 언제 어디서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마련된 차실이 아니라도 일반가정에서 혹은 찻집에서 수 없이 많은 차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오늘날의 현실에 맞는 차를 마실 때의 에티켓이 있을 법하다고 하지만, 실은 너무나 예의가 없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오늘날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차도의 까다로운 형식적 예의를 들추어내고 싶지는 않지만, 차의 생활에 있어서는 적어도 함부로 처리하는 알뜰하지 못한자 세는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하겠다.

 

차생활의 범절에 배해서는 앞의 서론에서 조금 언급한 바 있기에 이제 세세한 이야기는 피하기로 하지만 차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 워야 한다는 점이며, 또한 차구, 차실(茶室), 차를 행하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깨끗해야 할 것이다.

또 언제나 공경하는 마음과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며, 부 드럽고 조화로우며 이늑하고 조용한 분위기 여야하겠다. 이러한 알뜰하고 참다운 예()의 행사로써 우리는 성스러운 지경에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