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緖言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취미澤味)라 든가 기호(喝好)라 는 것이 누구에게나 내면 깊숙이 서리어 있기 마련이다. 이 러한 취미나 기호라는 것은 무한성(無限性)을 동경하는 것으로, 이 동경하는 이상(理想)을 우리들은 단적으로 멋’이라는 말로 표현한 다. 이 멋있는 생활을 우리는 힘써 추구(追求)하는 바 이 멋생활을 또 다른 말로서는 범절(凡節)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흔히 절도 있고 규모 있는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을 가리켜 ‘‘범절이 좋다”, “범절이 분명하다”는말을쓴다 이 경우범젤이란낱말은여러 가지 뜻을 지닌다.

첫째는예절바르고교양이 있으며,

둘째 옷차림에 있어서 경박하지 않고 검박(儉 朴)하며 품위 있게 보이는 것이며,

셋째 음식의 경우에 있어서 분에 맞고 간이 맞으며 음식 담는 그릇이 깨끗하고 그 용기(容器) 자체가 음식에 어울리는 것이며,

넷째 그 사람이 거처하는 방이나 집에 있어서 모든 것이 청결하고 모든 생활도구가 정연한 질서와 조화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며,

다섯째로는 일상행동이나 일상언어에 있어서 말씨 음성 등이 유순하고 겸허하며 의사표현이 분명한 것 등등이다.

그러나 이는 범절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도 범절의 주관적인 주체를 말해보면, 우리 개개인이 직면한 현실에서 일상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충분한 인간성을 발휘하며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사명과 이 사명에 따르는 덕행(德行)을 이루어 가는 것을 말함이니, 이것이 주가 되어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고 잠잠히 있고 움직이고  등의 모든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범절을 통털어 일상예절 (日常禮節)이라고 하며, 이 예절의 근간 되는 것을 덕목(德目)이라고도 일컫는다. 이러한 덕목이라 할까 또는 덕을 닦아 나가는 데는 곧 차 의 생활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는 것이다.

대체로 차()라는 음식물은 그 자체가 한낱 산당(山堂)과 식물의 눈잎〔徽葉〕으로 알맞게 법제(法製)되어 져서 우리들 일상생활의 기호(耆好)로 되고 있 으나, 이 차라는 것은 일찍이 공자께서 말씀하신 ‘불기(不器)’라 일컬을 수 있는 음식물이다. 이 불기’는 원효성사信暎聖師)가 말씀하시기를, “비록 평상시에 못생겨 보이나 그 때()에 따라 말문이 터지면 진뢰(虛雷)와 같은 소리가 난다 (瓚無功能應機說話 猶如天鼓〕”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 자체가 인간 생활면에 있어 반드시 필요불가결 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여 인간 생활의 그 어느 면에서도 기호 취미의 생활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은 인간이 문화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물질방면에서 불 때, 극실(렝質)히 말하면 불을 피워 물을 익혀 먹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 물과 불은 그 성질에 있어 가장 대차적(對踏的)인 것과 같이 또한 인간의 생활상도 결국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정반대되는 이면성(二面性)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것이 다.

그러므로 차생활이라는 뜻은 우리들이 진리(眞 理)에 부합되고 각성된 인간생활의 진정함을 목표로 하는- 것이며, 이러한 뜻을 불교에서는 ‘불 보살 (  菩薩)의 생활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공맹(孔孟)의 편에서는 ‘군자(君子)의 생활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차생활이라는 뜻이 우리에게 주는 인상은 매우 경쾌하고 활발하며, 동시에 매우 다양(多樣)한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향을 피우며 계절에 맞는 꽃들을 꺾어 구색 맞는 화병에 꽃꽂이 해 놓아 보기로 하고, 때로는 좋은 그림과 같은 서회慣隣)를 벽에 걸고 그 벽 앞에 책상을놓고그앞에 서 시()를읊거나 글을쓰기도하고그림을그리 기도 하며 그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이미 돌아가신 선영의 덕을 추모하기 도 하고 또는 자기가 믿는 종교의 대상을 향해 절하기도 하며 고요히 앉아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이러한 차생활은 우리로부터 오는 다음 세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밑거름이기도 하고 소재(素材)이기도 하며, 또 미래인을 위한 등대이기도 하고, 또 한 공덕탑(功德塔)이 기도 한 것이다. 이 얼마나 우리의 차생활이 놀랍고 아름답고 거룩함이 아닐 수 있겠는가.

인간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세계의 어느 나라 민족에 있어서도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각기의 민족 국가에 있어서 그지역 풍토내지 습속(習俗)등에 따라 그들에게는 그들만이 영위하는 생활면에 있어서 위에서 말한 불기적 (不器的)인 것을 찾으려 하였고, 또 이 불기적인 것을 의식주의 생활면에서 향락함으로써 그들 민족은 지정의(知情意)의 생활문화를 구축하였다 해도 좋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진정한 것이 기호 또는 취미생활 이 직접 간집으로 인간생활의 만반을 성취시켜 줌으로써 우리는 이를 ‘인 류문화사’라고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우리 한국민족의 식생활에 있어서 위에서 말한 불기적(不器的)인 것이 과연 무엇이던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차()가 곧 그것이다”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차인(茶 人)들이 말하기를 “한국에는 저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수백년간을 통하여 실지로 차를 기호로 하였으며, 또한 차의 기호가(빵好家)들이 그 고상한 취미에 맞추어 좋은 차 그릇을 만들었 기에 이것들이 세계 각 국 차인(茶人)들의 차회(茶會)에는 반드시 고려 차완 (茶腕)이 그 왕자로 동장하게까지 되었지만, 불행히도 한국 민족은 그 문화사 상(文化史上)에서 그것들을유지하여 존속시키지 못하고드디어 그자취가사 라졌다”고 한 다. 실 제로 이런 그네들의 말에 수긍하는 우리나라 사람도 적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한국의 사회생활의 근저(根 抵)를 잘 살피지 못한 데서 나온 망단(妄斷)이 다. 실로 우리 민족처럼 자기들의 인간대사(人間大事)를 결정하는 모든 예속(體俗)에 있어서 이 차례(茶禮)가 유지되고 존속되어 일대 미풍양속이 되어, 있는 민족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엔 한민족(韓民族)에게는 차가 그들 생활에 있어서 불기적(不器的)인 기호로서 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