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샘으로

2004년 편지

 

전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평화와 친교 그리고 기쁨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의 헤아릴 수 없는 아픔에도 마음을 씁니다. 그들은 특히 세계 도처에서 가난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1)

  민족의 지도자들만이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단순 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도 평화와 신뢰의 미래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무리 적다 해도, 하느님은 우리가 대립이 있는 곳에 화해를 가져 오고 불안이 있는 곳에 희망을 심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분은 인간을 향한 당신의 자비가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2)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평화를 전파한다면 그들이 가는 곳마다 빛으로 환해질 것입니다. (3)

 

언젠가 한 젊은이에게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데 제일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기쁨 그리고 선한 마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근심에 젖고 고통을 두려워할 때 기쁨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 길어낸 기쁨이 우리 안에서 솟아날 때 생명의 숨결이 함께 찾아옵니다.

  이 기쁨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신뢰의 눈길로 우리의 삶을 바라 보시기에 거듭 새롭게 피어납니다. (4)

  선한 마음은 마냥 순진한 것이 결코 아니며 깨어있는 자세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을 지닐 때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기도 합니다. 선한 마음은 남을 무시할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습니다. (5)

  선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 고통 받는 이들, 또 어린이의 아픔에 주목하게 됩니다. 선한 마음을 지닐 때 우리는인간은 누구나 사랑 받아야 한다는 것을 표정과 말투에 담아낼 수 있습니다. (6)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라도 활활 타오를 선함의 불씨를 우리가 영혼 깊숙이 지니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7)

 

그런데 어떻게 하면 선함과 기쁨의 샘으로 그리고 신뢰의 샘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 우리를 온전히 내어드릴 때 우리는 그 길을 발견합니다.

  역사를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수많은 신자들이 기도 안에서 하느님이 그들에게 빛과 내적 생활을 가져다 주심을 체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전에 이미 한 신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밤새도록 당신을 그리는 이 마음, 아침이 되어 당신을 찾는 이 간절한 심정!” (8)

  하느님과의 일치와 친교를 향한 열망은 무한한 과거부터 인간의 마음 속에 주어졌습니다. 이 친교의 신비는 인간 존재의 가장 깊고 내밀한 심연까지 움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말고 다른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당신은 우리 영혼에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고 계십니다.” (9)

 

 관상 가운데 기다리며 하느님 앞에 머무는 것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 기도 안에서 드디어 장막이 걷히고 말로 다할 수 없는 믿음의 실재가 드러납니다. 언어를 초월하는 이 무엇 때문에 우리는 경배할 수 있게 됩니다.

 열정이 식고 감흥이 사라질 때에도 하느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분의 자비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사실 하느님이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때때로 방심해 있습니다.

  명상의 눈길을 지닐 때 우리는 가장 단순 소박한 사건들 안에서 복음의 징표를 봅니다.

  그런 눈길은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 안에서조차 그리스도를 알아 봅니다. (10) 

  그런 눈길은 삼라만상 안에서 창조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많은 이들이하느님은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하고 자문합니다. 복음을 읽으면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든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며, 당신이 우리에게 맡기시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선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는 사실을.

  온 삶을 건 하느님의 부르심에 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여, 그 누구도 평생을 건 응낙을 이루도록 확실하게 세워지지 않았다면, 당신 친히 제 안에 오셔서 빛을 가득 밝혀 주십니다. 당신은 응낙과 거부가 맞부딪힐 때 저의 주저와 의심을 밝혀 주십니다.

  성령이여, 당신은 제가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도록 해 주십니다. 제 안에 있는 어떤 연약함도 당신이 오시어 머무시면서 변모시켜 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를 아주 멀리 이끌어 줄 응낙에 필요한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이 응낙은 드맑은 신뢰입니다.

  이 응낙은 모든 사랑의 샘입니다.

 

그리스도는 친교이십니다. 그분은 종교를 하나 더 창시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당신 안에서 일치와 친교를 베풀어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11) 그분의 제자들은 인류 안에서 겸손되이 신뢰와 평화의 누룩이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교회라는 이 비길 데 없는 친교의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은 복음, 성체성사(성찬식), 용서를 통한 평화 등 원천(源泉)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성성(聖性)은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보다 4세기 뒤에 아프리카의 신자 아우구스티누스는사랑하라. 그리고 그대의 삶으로 그것을 보여 주라!” 고 썼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친교와 일치가 이론이 아니라 삶일 때, 그것은 한 줄기 찬란한 희망을 던져 줍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세계의 평화를 위해 필요 불가결한 노력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그럴진대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갈라진 채로 지낼 수 있겠습니까?

  해를 거듭하면서 교회 일치의 성소(聖召)는 괄목할 만한 교류와 대화를 낳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살아있는 친교의 첫 열매입니다. (12)

일치와 친교야말로 진가를 가리는 시금석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인 각자의 마음 한 가운데서, 침묵과 사랑 안에서 생겨납니다. (13)

  그리스도인들의 긴 역사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문득,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이 갈라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오늘날 가능하면 가장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 그들은 흔히 분열에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 일치와 친교를 발견하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14)

  마음 깊은 곳에까지 화해의 열망을 간직한 이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은 같은 사랑, 한 마음, 하나이며 같은 친교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무한한 기쁨을 갈망합니다. (15)

  성령이여, 우리 마음 속에 일치와 친교를 향해 나아가려는 열망을 심어 주소서. 우리를 그리로 이끌어 주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부활절 저녁 예수께서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들 곁에서 함께 걸어 가신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닫지 못했습니다. (16)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주님은 기대조차 못했던 빛으로 우리 영혼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리고 비록 우리 안에 약간의 어둠이 남아 있다 해도, 인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는 무엇보다도 그분 현존의 신비가 자리한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확신을 하나 간직하도록 합시다. 어떤 확신 말입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끝나지 않을 사랑으로 너를 사랑한다.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고 성령을 통하여 언제나 너와 함께 있겠노라.(17)

 

 

24 아시아 말을 포함하여 57개국어로 번역된 편지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젊은이들의 유럽 모임에 즈음해 로제 수사가 것입니다. 편지는 2004 동안 매주 떼제에서 열리는 젊은이 모임과 세계 각지에서 개최되는 모임에서 묵상 자료로 사용됩니다.

 

1. 내적 생활을 심화하려는 사람은 사회의 여러 상황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이끌립니다. 예를 들면 세계의 54개국이 1990년에 비해 가난해졌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까?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 씨는 지난 빠리에서 열린 젊은이들의 유럽 모임에 즈음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세계에는 미래의 전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매일매일이 기아와 질병, 비참과의 힘든 싸움입니다. 거기에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력 분쟁이 득세하는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기 위해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것입니다.”

 

2. 사랑하는 교종 요한 23세는 이렇게 썼습니다. “신자는 누구나 오늘의 세계 안에서 빛을 발하는 불씨, 사랑의 보고, 모든 이들을 위한 누룩이 되도록 부름 받았다. 이것은 각자가 하느님과의 일치와 친교를 살아가는 정도에 비례하여 가능하다. 사실 사람 사람의 마음이 평화로 넘치지 않는다면 사람들 사이의 평화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지상의 평화, 1963 164-165)

 

3. 사도 바울로는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세상 안에서 빛을 내라고 신자들을 격려합니다. (필립비 2, 15-16 참조)

 

4. “주님이 오시는 천대받는 자들은 주님 앞에서 마냥 기쁘기만 하리라” (이사 29, 18-19). “근심을 멀리하고 마음을 달래라. 그리고 슬픔을 쫓아버려라. 슬퍼해서 이로울 것이 없다”(집회 30,21-25).

 

5. 공동체 생활을 하는 선한 마음은 더할 없는 가치입니다.  선한 마음은 어쩌면 친교의 아름다움을 가장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6. 아주 작은 어린이도 부모나 형제 자매의 선한 마음을 알아봅니다. 그것은 복음의 분명한 실상입니다. 어린이가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는 이를 토대로 해서 평생에 걸쳐 성숙할 있고, 우리도 사랑하도록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7. 철학자 리꾀르 씨는 떼제를 방문했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함은 가장 깊은 악보다 심오하다. 악이 아무리 극심하다 해도 선함만큼 심오할 없다. ”

 

8. 이사야 26, 9

 

9. 제자들 가운데 일부가 그리스도를 버리고 떠나기 시작했을 ,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 가겠느냐? ” 베드로는 이렇게 답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 (요한 6,67-68)

 

10. 하느님과의 일치와 친교 안에서 사는 사람은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 안에 살아가도록 이끌립니다. 복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가까워집니다. 정교회 신학자 올리비에 끌레망 씨는 이렇게 씁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될수록 책임있는 사람이 된다. 기도한다고 해서 세상의 여러 임무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기도가 우리를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사실 기도하는 것보다 책임감을 보여주는 행위는 없다. 이것은 다른 대륙의 소외된 지역에 사는 떼제의 형제들의 경우처럼 인간적으로 버림 받거나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곁에 다가가는 구체적인 형태를 있다. 이는 또한 우리가 경제를 포함하여 세계 문명, 문화 모든 분야에서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를 요구한다. ” (떼제- 삶에 의미를, 불어판, 빠리 1997)

 

11.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스물 살의 젊은 나이에 교회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찾아 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는 진정으로 하느님과의 친교로 받아들여진다”(성도들의 친교, 베를린 1930) 썼습니다.

 

12. 교회 일치의 소명에 대해 성찰하면서 안티오키아의 정교회 총대주교 이냐시오 4세는 최근 다마스커스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교회일치 운동이 현재의 고착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예언자적인 제안들이 긴급히 요청된다. 여러 교회가 서로 용서함으로써 회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예언자와 성인들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총대주교는 법규의 언어보다 친교의 언어를 선호할 요청했습니다.  지난해 교종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에서 그리스 정교회 지도자들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인들과 더불어 우리는, 흡수나 통합이 아닌 진리와 사랑 안에서의 만남이라는 완전한 일치와 친교로 마침내 우리를 이끌어 성성(聖性) 기초한 교회 일치 운동 바라봅니다.”

 

13. 화해는 지금 당장,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됩니다. 신자들이 마음 안에서 그것을 살아갈 화해는 믿을만한 것이 되고, 사랑의 친교인 교회 안에서 화해의 정신을 진작할 있습니다. 길을 걸어가려면 누구의 자존심도 상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14. 교회는 커다란 개방의 징표를, 과거에 갈라졌던 사람들이 이상 분열되지 않고 이미 일치와 친교 안에서 살아간다고 있을 만큼 그렇게 넓은 개방성의 징표를 보여줄 있겠습니까 ? 화해는 세계의 여기 저기서 일치와 친교의 삶이 이미 이루어진다고 여길 있는 정도에 따라 걸음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기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문서는 다음에 따라올 것입니다. 문서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지체없이 화해하라 복음의 요청에서 멀어지고 말지 않습니까?

 

15, 필립비 2,2참조

 

16. 루가 24,13-35 참조

 

17. 예레미야 31, 3 요한 14,16-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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